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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원리

워치만 니의 영에 속한 사람, 1부 영.혼.몸에 대한 서론

by deuga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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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만 니의 영에 속한 사람은 10부로 되어있습니다. 조금 길어서 나누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과 영과 혼과 몸

워치만 니 등 몇몇 신학자들은 우리 인간이 영과 혼과 몸의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성경에도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라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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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과 혼을 구분하는 이유는 이것은 믿는 이들의 영적 생명과 매우 많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믿는 자들이 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모른다면 영에 속한 생활을 이해할 수 없고, 깨닫지도 못하며, 영적인 생활 가운데 자랄 수도 없다. 믿는 자들이 영과 혼을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생명은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혼에 속한 것을 영에 속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영에 속한 것을 더 추구하려고 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혼에 속한 생활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breath of life)를 코에 불어 넣을 때 생기가 사람의 영(spirit)이 되어 몸에 접촉되자 혼(soul)이 생겨났다.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는 말씀은 영과 몸의 결합으로 혼을 생겨나게 한 것이다. 이것은 영과 몸이 혼에서 완전히 융합된 것을 말하며, ··육이 하나로 완전한 혼합이 있었고, 혼은 사람의 개성의 원인, 별개의 독특한 존재로서의 근원이 되었다. 천사들은 영으로 창조되었지만 사람은 현저히 생혼으로 창조되었다. 혼이 현재의 삶에서 우리 존재의 여러 요소들의 집합점인 반면, 영은 우리의 부활 상태의 지배 세력이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질세계와 접촉하는 육신은 영과 혼과 육의 각 기능을 하도록 우리에게 세계의식(world-consciousness)을 주는 부분이라 부를 수 있다. 혼은 현재의 생존 상태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지성과 감각으로부터 생기는 정서로 구성된다. 혼은 사람의 자아에 속하며,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므로 자의식(self-consciousness)의 부분이라 부른다. 영은 우리가 하나님과 영교하며 하나님을 알고, 예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알려주기 때문에 하나님 의식의 요소라 부른다. 하나님은 영 안에 계시고, 자아는 혼에 거하고, 감각은 몸 안에 거한다.

 

사람의 주된 요소는 혼이다. 혼은 영이 성령으로부터 받은 것을 전달해 주도록 영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혼이 온전해진 후 자신이 달성한 것을 몸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몸 또한 성령의 온전케 하심에 참여하여 신령한 몸이 되기 위한 것이다. 영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그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몸은 가장 저급하며 맨 바깥을 차지한다. 이 둘 사이에 혼이 있어서 그 매체의 역할을 한다. 몸은 혼의 외피이며, 혼은 영의 외피이다. 영은 그 생각을 혼에 전달하고, 혼은 몸에 작용하여 영의 명령을 순종하게 한다. 이것이 매체로서의 혼의 의미이다.

 

인격의 결정부분인 의지는 혼에 속해 있다. 영이 지배할 것인가, 몸이 지배할 것인가, 혼이 지배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의지이다. 혼이 이런 힘을 갖고 있고, 사람의 인격의 기관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서 성경에서는 사람을 생혼’(a living soul)이라 부른다.

 

사람을 성전에 비유한 것은 사람의 31체적 요소들이 어떻게 뚜렷이 구별되어 나타나는가를 볼 수 있다. 몸은 바깥뜰과 같아서 모두에게 보이는 생명과 함께 외적 위치를 차지한다. 중생한 사람의 성소와 같이 안에는 사람의 내적 삶을 구성하고, 사람의 정서와 의지와 정신을 포함하는 사람의 혼이 있다. 장막 뒤의 가장 깊은 곳에는 인간의 빛이 침투해 들어간 적이 없으며, 육안이 꿰뚫고 들여다 본 적이 없는 지성소가 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자리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은밀한 곳이다. 여기서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되고 영교하게 된다. 성전의 의식은 지성소의 계시에 따라 움직인다. 성소와 바깥뜰의 모든 활동은 지성소의 하나님의 임재에 의해 규제받는다.

 

2과 영과 혼

히브리서 4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 영과 혼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질적인 부분에는 관절과 골수를 포함시켰다. 제사장이 희생물 전체를 칼로 완전히 해부하고 분리시키듯이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분께 돌아온 사람을 완전히 분리하여 영에 속한 것과 혼에 속한 것과 몸에 속한 것을 모두 일일이 쪼개신다.

 

혼의 역할은 우리 인간의 지식, 지혜, 감정, 의지, 생각을 따라하는 모든 활동이다. 이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지 못하게 하고, 오직 영의 역할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갈 수 있게 된다. 영의 역할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행하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도록 하며, 양심, 계시, 영적인 직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기 전까지 우리 영은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있지만 사탄을 향해서는 살아있는 것이다. 무당이나 마법사들은 특별히 사단을 향하여 활발하게 살아있는 영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악한 쪽으로 영이 발달하여 사탄과 연결되어 사탄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가 영을 예배를 드려야 한다. 사람은 오직 자기 영으로만 하나님의 영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가 거듭날 때 성령님은 우리를 다스리게 되고 그의 영은 그의 혼을 다스릴 수 있게 되며, 혼을 통해 그의 몸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은 양심, 직관, 영교(communion)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양심은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분별기관이다. 직관은 외부의 어떤 영향과 관계없이 직접적 인식을 가져온다. 신자는 양심의 소리와 직관의 가르침에 주목해야 한다. 영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과 의도로는 알 수가 없지만 우리의 영으로 직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양심, 직관, 영교는 깊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대등한 위치에서 활동한다. 영은 하나님에 대한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여 하나님께 죽어 있는 것이다. 지성과 정서와 의지가 강화됨에 따라 영의 기능들은 너무 가려지고 숨겨져서 그 기능들이 거의 알려지지 않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신자가 중생한 후에 혼과 영을 구분하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아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혼을 가지고 있다. 혼 속에는 우리를 사람 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지성, 생각, 이념, 사랑, 정서, 분별, 선택, 결정 등은 다만 혼의 다양한 경험들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은 사람을 혼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사람의 존재와 특징과 삶은 모두 혼에 있기 때문이다.

 

혼 생명에 대하여 성경학자들은 헬라어로 생명을 표시하기 위해 비오스(bios), 프쉬케(psuche), 조에(zoe)가 사용되었다. 비오스는 생명, 생활로 생활비 전부를 넣은 과부를 칭찬할 때 사용하였다. 조에는 최고의 생명, 영의 생명으로 영생에 대해 말씀할 때 사용한다. 프쉬케는 사람의 활기 넘치는 생명, 타고난 생명, 혼 생명을 말하며 인간의 생명을 서술할 때 사용한다. 구약에는 혼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네페쉬(nephesh)가 혼 생명을 위해 사용되었다. 우리의 자아는 혼이다. 혼은 인격의 자리이며, 의지의 기관이며, 자연 생명인 진정한 나이다.

 

3과 사람의 타락

사람은 천사들의 영과 비슷한 영을 갖고 있고 동물들의 혼과도 비슷한 혼을 갖고 있다.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다. 사람은 주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의지를 발휘하여 순종, 불순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은 죄로 타락했고 그 결과 영, , 육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의 혼이 하나님의 영적 생명의 진리와 본질을 받고 흡수 동화하게 하는데 있었다.

 

죄의 성격을 검토해보면 반역 외에도 일종의 독립성도 있다. 생명나무는 의존의식을 의미하지만 선악의 지식의 나무는 독립성을 암시한다. 사람이 자기 의지를 발휘하여 약속받지 않은 지식, 곧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지 않은 그 무엇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영적인 사람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완전히 만족한다. 혼적인 사람은 하나님과 떨어져서 다른 방향으로 나가며,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 특히 지식을 탐한다.

 

우리 인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하고 그다음 자신이고, 나머지 자연은 자신의 다음순위에 놓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이후로 인간들은 자연을 우선순위로 하고 다음은 자신, 그다음에 하나님을 놓았다. 이로 인하여 우리에게 저주가 임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을 가장 높은 곳에 높고 그다음에 혼, 그다음에 육체의 순서로 우리 자신을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신자들은 육체가 원하는 대로 원초적인 본능을 가장 우선시 하고 그 다음을 혼, 그다음 영을 마지막의 순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믿는 신자들도 영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혼을 우선시 하고 그 다음에 육체, 영은 그 존재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혼만을 계발할 때 혼은 영을 억압하여 온 존재의 모든 활동이 피조물의 자연계의 영역 안에만 머물게 하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영역과 연합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본래 창조된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그의 혼 생명이 계발되었기 때문에 사망의 위치에 떨어지게 되었다.

 

타락 후의 영과 혼과 몸에 대하여 살펴본다. 아담은 자기 안에서 영이 된 생기로 살았다. 그는 영으로 하나님을 감지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알고, 하나님과 영교했다. 그러나 타락 후에 그의 영은 죽었다. 영의 죽음은 하나님과 교통의 중단이다. 정확한 상황은 영이 무능력해져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영적 본능을 잃었으므로 죄가 하나님에 대한 영의 예민한 직관적 앎을 파괴했고, 사람으로 하여금 영적으로 죽게 했다.

 

하나님의 생각은 영이 혼을 통제하여 우위를 갖게 하는데 있다. 그러나 사람이 일단 육적인 데로 방향을 틀면 그의 영은 혼에 예속되어 버리고 만다. 사람이 일단 육에 속하게 되면 더욱 퇴보하여 천한 몸이 주권을 갖게 되어 성령의 지배로부터 혼의 지배로, 다시 혼의 지배에서 몸의 지배로 내려간 것이다. 결국 죄는 몸에다가 권한을 부여했고, 죄의 성품이 몸에 군림하게 된 것이다.

 

4과 구원

죄는 영에 가장 깊은 영향을 준다. 그 결과 하나님의 아들이 거룩하셨지만 갈보리 십자가의 심판으로 아버지로부터 뿌리침을 받으셔야 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자체를 높이고 악령을 따라갔으므로 사람의 영은 더 이상 하나님을 저항하지 않고 적과연합 상태에 머무르기 위해 전적으로 부셔졌다. 그 때에 우리의 사악한 인성이 완전히 심판 받았다. 십자가는 죄인의 영, , 육이 전적으로 심판받은 곳에 있었다. 이후로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으로 거듭나 주 예수의 생명을 받을 것이다.

 

타 종교에서는 우리가 과거를 반성하고 선행을 많이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하지 않고자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자가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시인하고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으로 그저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라고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워치만 니는 그리스도인을 영에 속한 자와 육에 속한자로 구분하였다. 영에 속한 자는 거듭남으로 인하여 성령님의 인도함을 좇는 자이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아직 거듭나지 못하여 계속 영이 혼과 육체에 의해 지배를 받는 자이다. 믿는 이가 거듭난 후에 오랫동안 육에 속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다면, 그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은 아직 온전히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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