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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원리

워치만 니의 영에 속한 사람, 제3부 혼

by deuga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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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 죄로부터의 구원과 혼적 생명

로마서 6장은 죄로부터의 기독교인의 구원을 위한 기초를 놓고 있다. 구원은 죄인이 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나는 시간에 체험될 수 있다. 66절에서 죄(단수), 옛 사람, (죄의 몸)의 주된 요소는 각기 성질이 다르고, 죄 짓는 행동에서 각기 특유한 역할을 한다. 죄는 이 힘을 끊임없이 내뿜어 우리가 옛 사람에게 순종하도록 이끌어 죄를 짓게 한다. 옛 사람은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것을 의미한다. 죄의 몸은 죄의 세력에 종속되어 정욕과 죄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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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극복하고 싶으면 우리 몸을 복종시켜야 한다. 일단 몸의 요구를 극복하면 그들이 거룩해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부의 죄를 뿌리 뽑지도 않으시며, 외부의 몸을 억압하시지도 않는다. 십자기에 못 박힌다는 의미는 우리 옛 사람이 단번에 영원히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가셨을 때 우리의 옛 사람이 처리되었다고 확신시켜 준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이미 성취된 한 가지 사실임을 절대적으로 선언할 때 의심의 여지는 없다.

 

축복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로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6:11).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둘째로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3). 이것이 헌신의 본질이다.

 

혼이 사람의 타고난 생명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우리를 육신으로 살게 하는 힘이라는 뜻으로 말한다. 혼은 우리의 생명이다. 이 혼이 인간과 다른 생물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생명이기 때문에 중생하기 전에는 우리가 이것으로 살게 된다. 이 생명은 우리가 거듭 날 때 성령이 주시는 새 생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것은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zoe)을 주신다.

 

생명은 사람의 몸의 모든 지체를 살리는 사람 안의 힘이다. 이 내면의 혼적 힘은 외부의 신체적 활동을 통해 표현하게 된다. 신자가 십자가 위의 그의 대리인이 되시는 주 예수의 은혜를 받을 때 그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그의 영은 살아난다. 이렇게 주신 새 생명은 동시에 새 성품을 가져오게 된다. 혼적 생명은 죄의 성품으로, 영적 생명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11과 혼적인 신자들의 경험

모든 사람의 혼이 다양하듯이 혼적 신자들의 생활도 다양하다. 혼적 신자들은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다. 육적 기도교인들은 옷이나 말이나 행실에서 그들의 차이와 우월함을 과시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대다수 혼적 신자들은 자기의적(self-righteous) 태도를 보이지만 이것을 알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육신의 신자들은 정서에서 좌우되기 때문에 쉽게 감동을 받는다. 지나친 민감성은 혼적인 사람의 또 한 가지의 특징이다.

 

육적 기독교인은 외적 문제들로 자주 괴롭힘을 받는다. 혼적 생활을 잘 살아가는 기독교인은 자아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자만심이 매우 강하다.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애쓰고 모든 공로를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더라도 육적 신자들은 그들의 마음을 자아에 둔다.

 

혼적인 신자는 일에 매우 활동적이고, 열심 있고, 기꺼이 수행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열심과 힘이 있기 때문에 일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일만을 하는 것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혼적 신자들의 일은 느낌에 좌우되어 기분이 내킬 때에만 일하고, 일하다가 그만둘 느낌이 들면 자동적으로 그만둔다. 육적인 기독교인들은 일이 하고 싶어 못 견디어 한다. 혼적인 신자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10:40)하지만 육적 신자들은 힘든 일을 할 때 쉽게 낙심하게 된다. 혼적인 신자들은 비판하는데 빠르고, 용서하는데 느리다. 신령한 말하기를 좋아하고, 방대한 영적 어휘를 구사하며, 공명심이 강한 편이다. 육적인 사람은 매우 다재다능하기 때문에 생각이 활기차고 감정이 풍부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쉽게 일으키며, 그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12과 혼적인 생활의 위험

1.영이 억압당하는 위험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에 대한 완벽한 순서는 먼저 사람의 영에서 시작하고, 혼의 마음에 조명하시고, 몸을 통해 수행하신다. 하지만 하나님 자녀들 중 성령의 움직임을 지각하지 못하여 영적인 것과 혼적인 것을 구별할 수 없다. 혼으로 사는 한, 마음의 생각과 상상과 계획과 비전에 따라 움직인다. 이런 신자들은 혼이나 몸의 일들만을 감지할 수 있으며, 영적 지각을 상실하여 영은 하나님과 협력할 수 없게 되어 영적 성장은 정지된다.

 

2.몸의 영역으로 물러서는 위험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수많은 육신의 일들은 당연히 몸의 정욕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성도들에게 달라붙어 있는 수많은 혼의 다양한 활동들이 몸의 죄들과 함께 나온다. 신자가 단지 그의 죄의 성품만을 억압하고, 그의 타고난 생명을 억압하지 않으면 죄에 묶여 있게 되는 것이다.

 

3.허를 찌르는 어둠의 세력의 위험

야고보서는 혼적 생활과 사탄의 일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사탄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인간의 혼으로부터 가끔 생기는 지혜와 동일한 것이다. 지독한 시기는 인간의 혼에서 마귀의 활동을 통해 온다. 사탄이 사람 마음속에 생각을 주입시킬 수 있고, 신자의 혼을 그의 활동의 중심으로 간직하기 위해서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사탄의 계책은 자기를 위하여 옛 창조 부분을 가급적 많이 보전하려 한다. 신자들을 죄에 얽어매는 일에 실패하면, 그 다음으로 신자들이 그의 계교에 대한 무지나 성령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이용해서 타고난 생활을 계속하도록 유도하려고 한다.

 

13과 십자가와 혼

주를 따르고 사람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그와 같이 완벽하기를 소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십자가의 부름 소리가 필요불가결함을 주님은 잘 아셨다. 주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하신 말씀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들의 타고난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라고 요구하신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10:38)’는 우리가 주를 위해 혼 생명을 버리고 십자가에 내어 주라고 한다. 주는 우리 마음이 다른 어느 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그를 아낌없이 거침없이 섬기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타고난 애정을 무시할 만큼 그리스도를 순종하게 되면 신자의 타고난 사랑은 심한 고통을 받는다. 그런 슬픔과 고통은 그에게 실제로 십자가가 된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그들의 혼 생명을 죽음에 넘겨주도록 제자들을 부르고 있다. 베드로는 사람을 생각하여 그의 주가 십자가에서 육신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강권한 일에 대하여 주님의 대답은 엄히 꾸짖으시고 자기 연민 같은 생각은 사탄에게서만 올수 있다고 선언하셨다. 내 길이 그런 것 같이 너희 길도 그러해야 한다. 나만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 모두 그의 뜻을 행해야 한다. 너희도 너희 혼적 생명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순종하여 그것을 기꺼이 잃어야 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실 때, 우리의 타고난 생명은 본능적으로 자기 연민으로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롯의 처는 가장 큰 위기를 맞고서도 소유물을 잊지 못한 사람이다. 우리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시는 주의 경고를 따라야 한다. 신자가 외견상 세상을 버리고 모든 것을 뒤에 두고서도 그가 주를 위해 내어 버렸던 바로 그것들에 다시 매어달리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주 예수님은 혼 생명에 대해 한 번 더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혼적 생명에 대한 밀알의 관계에 특별한 주의를 끌고 싶은 것이다.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열매 맺는 다른 길도 없는 것이다. 재능, 은사, 지식, 지혜를 포함해서 혼에서 발생하는 모든 힘은 신자로 하여금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영적 신자들의 많은 경험은 우리의 혼성이 확실히 죽음에 넘겨지고, 그 생명이 작용하지 못하게 늘 억제되지 않으면 봉사에 매우 활동적이라는 것을 확인해 준다.

 

14과 영적인 신자들과 혼

혼적 생명에는 평안이 없다. 자아가 처리되기까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 변하는 자극과 감정으로 살아가게 되어 불안정하고 기복 있는 생활양식을 보인다. 히브리서 412절은 성령이 여기서 영과 혼을 분리시키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뚜렷한 하나의 삶이며, 신자의 행보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옛 희생 제물이 제사장의 칼로 갈라 관절과 골수가 드러나고 분리되듯, 오늘 신자의 혼과 영은 우리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쪼개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혼이 더 이상 영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또 영이 더 이상 혼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혼적 생활은 우리에게 안식을 결코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을 반드시 체험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십자가가 혼적 생명에 그 작용을 수행한 다음에야 영이 해방된다. 영과 혼의 불화가 감각적 행보의 기쁨을 가져오거나, 그 기쁨을 기꺼이 버리지 않을 때의 손상이나 피해를 모르면, 우리는 어떤 영적 전진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구약의 제단은 신약의 십자가를 나타낸다. 신자들은 먼저 그들이 십자가로 기꺼이 와서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의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예리한 칼인 그의 말씀을 휘두를 것을 기대할 수가 없다. 우리가 제단 위에 눕는 것은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물이며, 칼을 사용하여 분리하는 것은 제사장의 사역이다. 우리는 극진한 충성심으로 우리 몫을 수행해야 하고, 나머지는 자비하시고 신실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게 맡겨야 한다. 그러면 적절한 시간에 그가 우리를 완전한 영적 체험 속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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