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논문 "선교의 관점에서 본 치유사역의 이해와 실제"를 몇 차례로 나누어서 연재하려고 합니다. 두번째로 선교를 위한 치유사역의 기여점과 전략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3. 선교를 위한 치유사역의 기여
1. 개인 신앙의 성장
개인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은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고후13:13)과 같이 함께 참여하심을 맛본 자들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육체에 거하시고 그의 전으로 삼으신 것이다. 특히 물(세례)과 피(성찬)의 성례를 경험하면서 교회에 소속된 증거이며,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가져다주시는 확신의 근거가 된다. 신약의 저자들은 성령을 믿는 자들을 위해 행하시는 확신의 역사를 양자 삼으심, 인치심, 보증, 첫 열매, 확신으로 표현하였다. 성령이 행하시는 확신의 역사는 ‘이미’이루었지만, ‘아직’다 이루지 못한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해 우리는 교만에 빠지지 않으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치유가 동반된 복음전도는 매우 능력 있는 효과적인 전도방법이다. 능력전도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므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복음에 대한 거부감이 제거되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수용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며 전도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먼저, 개인적으로 매일 주님과 사귀면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에서 자연스럽게 시작하여 차츰 소그룹 모임이나 구역모임을 통하여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하면 된다.
또, 치유가 동반된 전도를 할 때는 교회에 소속하여 목회자의 허락과 지도 아래서 해야 한다. 목회사역에 직접 치유를 활용하길 원할 때에도 먼저 기도하면서 치유에 관한 성경을 연구하고, 비디오나 테이프를 통하여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가 진행되면 교회의 성도들에게 치유사역을 훈련하여 교회에 적용시킨다. 주로 수요기도회나 금요기도회 때 시연을 통하여 훈련을 쌓을 수 있으며, 영성치유개발 훈련 세미나에 참여하여 감각을 더 민감하게 훈련시킬 수도 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선교의 역사를 행하셨는데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하였고, 이사야를 향하여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할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라고 하신 것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한 선교의 목적이었다.
초대교회로부터 크게 부흥했던 오순절 성령운동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영성을 유지하는 맥을 형성해 왔지만 20세기 선교에 들어오면서부터 성령운동은 개인의 신앙 성장과 교회성장, 세계선교 복음화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해 왔다.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 Gavran)은 한 성도의 신앙성장을 제자화와 완전화로 이해하였다. 제자화는 예수님이 나의 구제주이며, 교인됨과 공동체의 일원임을 믿어서 제자로 변화되는 단계이다. 완전화는 제자된 개인에게 도덕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철저한 기독교적인 생활 방식이 이루어져서 사회적. 인종적. 정치적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제자화가 이루어진 신자들에 대한 양육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신유의 체험은 자기 자신에게나 또는 믿든지 믿지 않든지 타인에게 현실적으로 드러내 보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임으로 신유를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죽을 몸에서 살리신 은혜에 감격하여 헌신, 충성, 봉사를 다짐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려는 열정이 생겨나게 된다. 특별히 신유 후의 신앙은 급성장하여 자신의 신앙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이 되어 본인의 신앙의 성숙은 물론 교회성장과 세계선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들은 우선 질병의 치유를 통하여 가장 먼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게 된다. 그 다음으로 그동안 죄인임을 고백하게 되고 신앙이 성숙되어 성도로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과 말씀에 순종하여 열정적인 전도와 헌신적인 자세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는 것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통하여 신유를 경험한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봉사와 헌신할 기회를 얻고자 더욱 열심을 내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기쁨과 감격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유는 간접적이던지 직접적이던지 개인의 신앙뿐만 아니라 전도와 헌신에도 큰 영향을 미쳐 교회가 양적. 질적으로 부흥하는데 절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을 위해서는 항상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곧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이다.
조용기 목사는 성령 충만한 삶의 특징을 기쁨이 넘치는 삶, 담대한 믿음이 있는 삶,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삶, 생명력이 넘치는 삶, 병 고침의 능력이 넘치는 삶, 감사와 평강이 넘치는 삶, 방언의 기도가 넘치는 삶, 기적이 충만한 삶, 성령의 열매가 충만한 삶, 전도하는 삶으로 보았다. 이러한 성령 충만한 삶이 있을 때 권세있는 신앙생활, 문제 해결을 통한 승리체험, 담대한 복음 증거가 가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성령 충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날마다 일정한 시간을 내어서 기도와 말씀과 묵상을 하며, 모이기를 힘쓰고, 회개의 심령으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않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도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것이다.
2. 교회의 성장
성령님은 새로운 하나님의 임재이며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미래이다. 연합을 일으키심으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시며, 화목하게 하시고,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재산과 소유를 함께 나누고,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항상 함께 모이기를 위해 시간을 내었다. 성령 안에서 진정한 성도의 교제란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교제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살수 없는 것을 의미함으로 서로의 돌봄이 필요하고 오직 기도와 예배가 가능하였다.
사도행전1장4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8절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하시며 제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후에 담대하게 증인된 삶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은 교회로 하여금 주어진 복음의 소식을 가지고 무리들 앞으로 나가게 하여 그들을 복음으로 이끌어 들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심지어 산헤드린공회 앞에서도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20)며 증거하게 된 것이다.
치유사역의 주체는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은 제자들을 복음의 증인들이 되도록 하시고, 그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은사와 기적을 주었다. 그 결과 놀라운 선교의 열매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성령은 인간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를 책망하며 그 인간으로 하여금 애통하는 데까지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말씀으로 임하여 표적과 기사를 드러냄으로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의 가르침을 받고 변화되어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게 되었고(행2:41),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게(행6:7) 된 것이다.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교회성장 이론은 선교에서 가장 우선적인 초점이 교회성장이며, 건강한 자립교회가 선교지에 설 때 그 교회를 통하여 영혼구원도 이루어지고 인간화를 위한 모든 사역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맥가브란은 선교에서 회심의 점진성을 강조하여 복음화와 인간화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초가 교회성이라는 것이다.
피터 왜그너(Peter Wagner)도 1980년 이후 이론적으로 교회 성장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성장하는 교회와 쇠퇴하는 교회를 대상으로 그 원인을 분석 연구하여 『교회성장원리』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성장하는 교회는 성장의 촉매역할을 하는 강력한 목회자, 헌신하는 평신도들, 규모가 넉넉한 교회, 대예배와 모임과 셀 사이의 조화, 동질 구성단위의 교인들, 제자를 만드는 전도 방법 그리고 복음전도에 대한 성서적인 우선순위 등의 7가지 표적이 나타난다고 강조하였다.
셀 그룹(구역)의 활용은 교회가 2,000년을 내려오면서 주로 대그룹 중심의 공동체 생활이었다면 오늘날은 소그룹 중심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빌 벡햄(William A. Beckham)은 셀 교회를 한 날개는 대그룹의 예배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한 날개는 소그룹의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셀 교회 운동은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로 처음 시작하셨고, 초대교회는 이 셀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급속히 유럽으로 전파하게 되었다.
특히 G-12사역이 세계를 제자화와 복음화를 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과 방법이라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역동적인 영성을 회복하고 제자화의 성경적 전략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G-12교회는 영성에 대한 철저한 헌신을 요구하므로 교회 안에 어떠한 프로그램보다 하나님의 교회로서 영성이 있는가? 그 영성을 위하여 목회자와 교회지도자들과 장로들과 모든 성도들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에 관건이 달려있다.
또 교회 안에서는 제자와 스승 간의헌신이 요구된다. 사람에 대해서 헌신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헌신할 때 그 이후의 것은 다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12제자와 스승이 있으므로 팀 사역을 위한 제자들 상호간의 헌신과 제자와 스승간의 철저한 헌신과 비전을 공유하는 상호 유기적인 역할들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할 때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 줄 알며, 그 비전에 헌신하며, 그 비전을 받은 목회자에게도 헌신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구역모임을 통해 셀 교회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된 원동력은 셀 모임 안에서 성령의 은사로 서로 섬기고, 서로를 세우며, 치유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로 세워져 가는 구조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셀 모임은 성도들의 영적 은사를 개발하고, 모든 신자들을 사역자로 세우는데 가장 좋은 실습과 사역의 장이라는 것이다.
알파코스의 활용은 불신자를 상대로 복음 제시와 성령 체험을 통하여 결신시켜 교회에 정착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알파코스는 1976년 영국의 성공회 교회인 HTB(Holy Trinity Brompton)교회에서 찰스 만함(Charles Marnham)신부에 의해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데 탁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2개 교회가 알파코스를 도입하여 적용한 이래 2006년 현재 2,350개 교회에서 알파코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전 세계 160개 나라에서 적요되고 75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800만 명 이상이 알파코스를 경험하고 있다.
알파(ALPHA)는 Anyone can come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Learning and laughter (웃고 즐기며 배웁니다), Pasta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눕니다), Helping one another(서로가 서로를 돕습니다), Ask anything(무엇이든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의 첫 글자를 따서 ALPHA라고 한다. 알파코스는 성령사역과 치유사역을 통하여 초월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중요하며 치유사역 전 예수님의 보혈을 적용하기 위한 성령의 초대가 선행된다. 보혈의 적용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가? 에 대한 토크가 이루어지고 성령이 부어주시는 지식. 지혜. 병 고침의 은사의 인도에 따라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하게 된다. 치유의 출발은 오늘도 우리가 치유 받고 온전하길 바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전인적 치유를 베푸시길 기대하는 믿음과 확신 아래에서의 재창조와 정상 회복의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는 교회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는 교회들이다. 성령에 붙들린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성령으로부터 비전을 받아야 한다. 목회자는 기도 가운데 비전을 받고, 기도하면서 비전을 성도들과 나누고, 기도의 힘으로 비전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또,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의 체험을 할 수 있게 하고, 기도를 위해 특별히 헌신된 사람들 즉 중보 기도자를 모집하고, 교육, 훈련하여 기도 운동이 활성화 될 때 건강하고 균형있는 교회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3. 세계의 복음화에 기여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식민지가 붕괴되고 많은 신생 독립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면서 과거의 민속종교나 전래 종교로의 복귀를 시도하였고, 그 결과 서구 선교사들을 입국 제한시키거나 추방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시기에 공산주의 이념의 부각으로 기독교 선교에 대한 강력한 방해로 작용하였고, 많은 서구 선교사들이 세계 여러 선교지에서 철수하면서 전통적인 선교활동이 위축되었다. 또한 제국주의 팽창과 더불어 이들 세력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세계대전이 기독교 국가들의 주도로 이루어져서 비서구 세계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자신들이 전한 복음이 문화와 문명을 전하는 기회로 사용하여 가부장주의, 비관용, 오만함 등으로 문화 파괴, 사회구조 와해, 전통 종교 억압, 정체성 상실의 저해 등을 가져오게 되어 피선교지의 교회가 서구에 종속되는 불평등하고 종속적인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가 제 3세계에도 기독교가 비교적 많이 성장하게 되면서 비기독교 세계에 대하여 서구교회의 반성이 기회가 되어 불평등한 관계의 청산과 제국주의와 결탁한 서구교회와의 단절을 추구하면서 자립교회의 확립과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 되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명령에 따라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선교로 이해해 왔다. 교회 밖의 잃어버린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관심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선교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해 왔다. 이러한 영혼구원사업을 선교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복음주의 선교이다.
복음주의 선교신학은 복음전도 또는 세계복음화를 교회의 최고의 사명이라고 고백하며, 개종자를 얻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복음을 선포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메시지의 내용은 분명해야 하므로 존 스토트(J. Stott)는 이 복음적 메시지가 먼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이 중심이 되는 복음의 사건, 증언, 약속, 회개의 믿음을 복음의 요소로 보았다. 그러나 복음주의 선교신학에서 맥가브란(D. Mcgavran)이 좀 더 확대된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선교란 예수그리스도에게 아무런 충성을 바치고 있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화의 장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그들을 격려하여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와 주인으로써 받아들이게 하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인 교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게 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복음전도와 정의의 실천에 함께 사역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전통적인 선교는 복음을 전하고 토착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이해되었으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정의의 실천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주의 선교신학이 현실문제에 대하여 외면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다양한 문화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복음과 하나님의 절대성의 수용을 위한 선교 과제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영성이라는 것이다.
개혁자들의 성령이해의 경우는 성령의 중생사역과 성화사역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많이 강조하였고, 오순절주의자들의 경우는 성령의 두 번째 사역 즉 성령세례의 사역과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많이 강조한 반면, WCC 에큐메니칼 진영은 온 우주 만물 가운데 샬롬을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사역에 많은 강조점을 둔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칼 진영의 성령이해는 앞에 나타난 두 가지의 성령이해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차이점을 지닌다. 에큐메니칼 성령이해는 세계 교회 협의회가 지니고 있는 성령 이해이다. 협의회에 소속된 교회들의 신학과 선교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전 세계 교회의 신학과 선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피터 왜그너는 능력대결을 통하여 교회의 성장과 선교에 놀라운 효과를 보인다고 하였다. 어떤 지역에서 자리 잡고 있는 전통 신과의 대결이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이름의 권세로 사단의 세력을 깨트려야 악령을 쫓아 날수 있고, 치유나 여러 가지 이적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시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믿음의 증거가 있을 때 복음전파는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짧은 시일 내에 그 지역이나 종족의 동질집단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증함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갈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세력을 대적하고 몰아냄으로 지역을 복음화 시키고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일은 목회자와 훈련된 중보 기도자들의 부단한 기도를 통하여 가능하다. 훈련된 중보기도 사역자들은 대부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거나 직접 치유를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일반적인 전도에 있어서도 앞에서 말한 ‘능력기도’를 활용하여 명령하며 선포하며 중보로 기도할 때에 그 지역의 영혼을 구원하고 자연스럽게 교회의 부흥은 이루어질 것이다.
피터 왜그너는 선교전략의 필수요소를 성경중심의 목표, 효율성, 적용성으로 보고, 그 이유로 활동사항을 규정하고 실천부분을 정하여 적절한 방법을 세워주며, 선교지와 본국 본부와의 권위체계 및 관계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성령의 이끄심대로 선교하는 것이다. 사도행전21장4절에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고 기록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선교한 바울의 예를 볼 수 있다.
피터 왜그너는 그 원리를 성경에 근거한 파종의 원리(마13:1-23), 관리의 원리(눅3:6-9), 수확의 원리(마9:37-38)로 설명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전략이 없다면 평가가 불가능하여 효과적인 미래 선교계획을 수립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은 선교의 노선이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선교로 양분화 되어있어서 복음주의는 개인의 복음화를 강조하고 에큐메니칼은 인간화를 강조하므로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임을 알고 종교적 심리상황과 문화적 이해,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성령의 뜻을 추구하는 효과적인 선교전략을 세워야 한다. 성령은 선교의 주창자요, 영감자요, 인도자요, 집행자이며,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이시라고 하였다. 성령의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부흥운동의 시기에는 선교가 역동적으로 수행되었으나 성령의 역사가 미미했을 때는 교회가 약화되면서 그것이 선교의 둔화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예수님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하는 데 귀신이 쫓겨나가며 병든 자가 치료되는 표적과 기사가 따를 것을 약속하셨다(막16:15-18). 제자들이 보냄을 받고 나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따르는 표적과 기사로 복음을 확실하게 전하도록 해주셨다(막16:19-20). 기독교의 첫 이방 선교사요, 이방 사도인 바울은 롬15:18-19)에서 기사와 표적, 죽은 자를 살리고(행20:8-12), 멜리데 섬에서 추장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고쳐주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선교와 전도에 병을 고치는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능력기도를 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복음에 대한 거부감이 빨리 극복되어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수용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비복음화 인구의 95%가 북위 10/40창의 지역에 살고 있으며, 지구촌의 최저 빈곤자의 82%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악령과 우상숭배, 질병과 기아로 고통을 항하고 있어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므로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능력기도를 통하여 사단의 권세를 파괴하고, 묶고, 몰아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을 교회에 위임해 주시고, 이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시며, 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세계 곳곳에 미전도 종족을 남겨둔 것이다. 치유사역은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명령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므로 우리는 치유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치유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잃어버린 영혼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한 성령의 임재의 경험이므로 미전도 종족이나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선교지에서는 선교의 전략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4. 치유사역의 전략
1. 기도를 통한 치유
우리는 기적과 치유를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받아드려야 한다. 치유와 해방, 사랑과 용서를 위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치유방법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치유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모든 능력과 권세의 통치자이심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들을 활용하여 치유사역이 더욱 풍성해 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피터 왜그너는 기도의 본질은 신자와 하나님간의 인격적인 관계이므로 ‘아버지와의 친밀감’으로 부르며, “효과적인 기도는 역사하며 능력 있는 기도는 역사한다”고 하였다. 존 터너(John Turner)는 “모든 치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속에 회복시키는 힘을 주셨고, 인간은 창조할 수도 치유할 수도 없으며 다만 창조적인 힘과 협력하거나 그 힘을 방해하는 장벽을 없애는 법을 배우는 것일 뿐이다. 질병에는 유기적, 기능적, 감정적, 심리적, 영적인 원인이 있어서 물리적, 육체적 수단이 아닌 것을 통해서도 치유는 일어나므로 올바른 치유사역은 치유 가능한 모든 수단을 수용하며, 용납하며, 어느 한 가지도 무시하지 않는다.
터너는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기도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구하고, 진심으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열망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치유의 은총을 간구할 때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치유를 위한 기본적인 기도는 회개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도와 성령의 임재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능력기도이다.
능력기도는 우선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에베소서6장18절 말씀을 근거를 둔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약하거나 없는 것은 성령 안에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사야59장1-2절 말씀과 같이 막힌 것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심령과 어떻게 해야 주님만이 역사할 수 있을까를 항상 염두에 두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영으로 육을 죽이고(롬8:13-14), 성령의 소욕이 강해야 하며(갈516-18), 내 힘으로 하지 않도록 성령님께 맡기는 기도가 필요하다. 성령님께 맡기는 기도의 기초인 능력기도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있도록 충분한 찬양을 드린다.
둘째 제거 기도를 해야 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의 말씀처럼 회개가 있어야 하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성령님의 도우심과 긍휼을 바라는 낮추는 기도를 해야 한다. 영. 혼. 육의 장애요소인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는 통성이나 묵상을 통하여 ‘예수의 피’, ‘예수의 이름’, ‘성령의 불'과 같은 말을 선포하면서 내 생각, 감정적인 마음, 아직 제거되지 않은 죄, 사탄의 유혹과 온 몸의 부정적인 부분 등을 구체적으로 제거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자세는 머리는 반듯이 앞을 향하고, 어께는 펴서 자연스럽게 하고, 두 손은 앞으로 내어 밀어 성령의 임재를 손으로 느끼면서, 내 말대로 된다는 믿음으로 말과 똑같은 상상을 하면서 진행형으로 기도해야 한다.
셋째 성령의 임재를 위하여 통성이나 묵상으로 더 깊이 영의 세계로 들어가거나 느끼면서 임하심의 기도와 흘러나오심의 기도를 해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령의 임재를 위한 기도와 성령님의 만지심에 대한 느낌을 느끼려고 해야 하며, 임파테이션이 일어날 때도 영에서 혼으로 혼에서 몸으로 성령님의 능력이 그대로 흘러 나가도록 느끼면서 성령님이 역사할 수 있는 도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넷째 각양 은사가 나타나서 더 깊은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기도와 성령과의 대화나 방언과 통변으로 응답을 위한 기도를 한다. 이러한 기도를 할 때 여러 현상이 일어나는 데 하품, 기침, 구역질, 트림이나 진동, 어느 부위의 움직임 등의 제거되는 현상과 평안, 기쁨, 뜨거움, 전류, 확신, 쓰러짐, 은사가 나타나는 성령의 임재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외적인 현상이 없어도 성령의 임재현상은 일어나고 있으므로 계속 성령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응답을 위한 기도는 성령님이 가르쳐주는 것과 생각나는 것을 의심 없이 기도해야 한다. 기도와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진행형으로 기도하되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선포기도를 한다.
손기철 장로는 기도의 실전을 6단계로 소개하고 있다. 첫째로 반드시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반드시 당신의 입술을 사용하여 소리내어 선포해야 한다.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라. 다섯째로 선포하고 구하는 것은 얻은 줄로 믿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호와를 송축하며 감사하라는 것이다. 이에 본장에서는 기도와 말씀과 매개체를 통한 치유 부분만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믿음의 기도
믿음이 없이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을 마태복음13장58절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17장20절 말씀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시며 믿음이 최우선임을 보여주셨다. 또한 야고보서5장15절에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고, 마가복음9장23절에서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우리들은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막상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그것은 보이는 3차원의 모든 것들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부정적이고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과 바라봄의 믿음법칙을 사용하여야 하고, 심고 거둘 열매를 실체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기대해야 한다. 치유사역자가 병을 치료할 때에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치료가 가능하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져야 질병을 쉽게 치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항상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성장시켜야 한다. 일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성령님과의 동행과 말씀묵상과 함께 믿음의 사람들과 가까이 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의 학습은 영적인 습관이 되어 평생 동안 저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항상 믿음에 굳건히 세워나가야 한다.
1. 중보기도
중보기도의 힘은 초자연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병자라 할지라도 중보기도를 통하여 가능하며, 전화를 통해서도 치유가 일어난다. 효과적인 중보기도는 병자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상상을 하면서, 강한 믿음으로, 직접 안수하듯이,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중보기도를 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준비기도가 필요하며,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개인이나 단체를 위한 중보기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신디 제이콥스는 전국적 기도 모임을 통하여 “악마적인 귀신들이 하나님께서 개개인들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방해하고 있다면 그것을 푸는 가장 좋은 접근 방법은 귀신들을 대면할 뿐만 아니라 마귀의 세력을 약화시키거나 패배시킬 있다”고 하며 3차원의 영적 전투를 소개하고 있다. 국지차원의 영적 전투는 개개인들을 괴롭히는 마귀적 귀신들을 대결하며, 주술 종교 차원의 영적 전투는 점술, 무속, 프리메서니, 뉴에이지 등과 같은 어두움의 조직된 세력들을 노출시킨다. 전략 차원의 영적 전투는 에베소서6장12절 말씀처럼 어두움의 정사들과 권세들과 지배자들과 씨름하는 것을 포함한다. 신디 제이콥스는 모든 차원의 영적 전투가 악한 자와의 중요한 대결 영역이기는 하지만 전략차원의 영적 전투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영적 매핑(지역조사를 통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한 것이다.
영적 매핑이라는 말은 1990년 말엽 <센티넬 그룹>의 조지 오티스 2세가 만들어낸 언어다. 오티스는 보이지 않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보다 어떠한 거처에 존재해 있는 초월하는 존재가 있으며, 이것이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전재하며, 어떤 지역을 관장하는 세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확한 정보를 통하여 마귀의 진을 허물기 위한 방법으로 중보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피터 왜그너는 방패기도를 소개하면서 개인적 중보기도자의 유형을 3가지로 나누었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둘러싸여 있는 내부원은 목사와 자주 만나는 관계를 중심으로 한 I-1 중보자, 중간원은 가끔 만나는 관계로 목사로부터 조금 떨어진 I-2 중보자, 외부원은 별로 관계가 없이 목사로부터 멀리 떨어진 I-3 중보자로 나누었다.
I-3 중보자들은 대부분 일방통행식의 관계로 목사는 중보자들이 누구인지 모르며, 기도해 주는 사실 조차도 모른다. 빌리 그래함이 가장 전형적이며, 2살부터 노인에 이르는 무명의 중보자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사역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I-2 중보자들은 가끔씩 목회자들과 정기적인 접촉을 하며, 별도의 모임도 갖지만 개별적인 관계는 그리 가깝지 않은 유형으로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인사하는 정도이다. 피터 왜그너는 이러한 유형의 중보자들을 잘 발굴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목회방침과 계획에 맞는 전략적인 기도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I-3 중보자들은 사회적으로나 영적으로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대부분 중보기도의 은사를 가진 자들이며, 하나님과 특별한 교통함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분별하게 해 준다. 대개 한 사람에서 세 사람 정도가 일반적이다. 생사를 위한 싸움이 있을 때에 죽음과 파괴의 영을 직감하고 사탄의 공격을 방어하는 기도를 한다.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영적전쟁에서 사단의 불화살을 대신 막아주는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3. 안수기도
구약시대의 안수는 부모가 자손에게 주는 상속으로서의 축복권(창48:14), 영적인 지도자가 후계자에게 지휘권을 위임할 때의 위임권(민27:23), 희생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사람의 죄를 짐승의 제물에게 죄의 전가시키는 행위(레1:4), 레위인을 선발할 때 레위인을 하나님께 봉헌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신약시대의 예수님은 전도생활과 더불어 평상시에도 항상 사용하였다. 마가복음10장13-16절 말씀에는 오히려 병자에게나 어린아이에게 자기의 손을 얹는 것을 반대하는 제자들에게 금하지 말라고 하시며 축복의 안수를 하였다. 디모데도 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은사가 전이된 것(딤전4:14, 행19:6)을 보아 치유사역에 보편적으로 안수기도가 사용되어 왔다고 생각한다(막16:18).
마가복음8장22-26절에 벳세다에서 소경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방법을 보면 한 번 안수하시고 다시 안수하시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거듭 안수하여 온전케 하셨으므로 한번 안수하여 병이 낫지 않는다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거듭 안수하여 병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안수기도를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병이 낫기도 한다.
이와 같이 안수기도는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과 믿음의 기도가 되어야 하며, 환부에 직접 안수하는 것도 좋으나 안수하기가 곤란한 부위는 본인의 손을 얹고 그 위에 손을 얹거나 동성의 치유동역자의 손 위에 얹거나 손을 조금 떼어 기도하는 것이 미덕상 좋아 보인다. 그리고 머리 안수에 대해서는 교단과 교회의 이견이 있으므로 교회질서에 비추어 직분차이가 있을 때에는 유의해야 한다.
4. 회개기도와 금식기도
성경은 고백과 죄의 용서와 병 고침에 대하여 민수기12장11절에서 미리암이 문둥병이 나은 사건은 아론과 미리아이 죄를 인정하였을 때 고침을 받았고, 베데스다 목사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실 때에도 요한복음5장14절에서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또 마가복음2장5절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심으로 나음을 입은 것은 죄로 인하여 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사죄와 치유, 고백과 치유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죄를 사함을 받는 순간이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순간에 치료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금식기도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낮추는 특별한 기도이므로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여져서 질병이 낫는 능력 있는 기도이다. 금식기도를 통하여 고침 받은 병자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축사나 병 고침이 힘들 때 금식을 시켜가면서 치유기도를 하면 고쳐질 때가 많다. 그러나 체중감소가 심하거나 몸이 너무 탈진되는 자는 삼가는 것이 좋다.
금식기도 할 때 우리는 성령 충만하게 되어 인간적인 정욕이 사라지고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배고픔과 육신의 피곤으로 유혹이 있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의 눈이 열기기도 하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게 되는 체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금식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금식해야 한다. 병적인 금식이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하는 금식, 그냥 구태의연하게 하는 40일 또는 100일 금식 등 자신의 의지대로만 하는 무의미한 금식은 자신의 건강을 해칠 뿐이며, 오히려 마귀가 당신의 금식을 통하여 자신의 병기로 삼아 버린다. 그러므로 금식조차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금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명령과 선포기도
치유에 사용되는 방법에는 명령과 선포로 치유를 행한다. 초대교회 시대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충만한 생활 중에 정한 기도시간에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하였고, 예수님도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여 고쳐주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유럽에서 집회할 때 앞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부인을 향해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병에서 고침 받게 될지어다”라고 명령하고 선포하였고 예배가 끝나갈 무렵에 “부인, 당신이 원한다면 그 의자에서 내려올 수 있습니다”고 돌아서는 순간 고침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일은 담대한 믿음으로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은사를 따라 전적인 의지와 오직 복종함으로 선포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게 된다고 하였다.
찰스와 프란시스 헌터 부부는 병을 고칠 때 기도보다도 명령을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마귀를 쫓아내거나 병자들의 지체의 기능이 회복되도록 하거나 잘못된 뼈와 몸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위한 치유방법으로 ‘자라나라’ ‘펴질지어다’ 등의 반복적이고 구체적인 명령과 선포를 통해 치유사역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질병 종류별로 치유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팔과 다리가 자라나는 일’ ‘골반 일’ ‘목 일’ ‘종합적인 일’ 등을 하면서 질병을 꾸짖고, 뼈가 제 위치로 돌아가며, 신경이 자유할 것과 기능이 회복될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령과 선포기도에 너무 치우치거나 간구기도를 무시하는 경우가 없도록 적절하고 조화 있게 치유사역을 하여야 한다.
6. 축사기도
구약에서는 귀신들린 자들의 이야기가 몇 군데 나온다. 삼상16:23절에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하신 말씀과 욥기2장7절에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고 기록한 말씀이다.
신약에서는 공관복음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마가복음1장21-28절에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귀신을 쫓아내신 일과 마가복음5장1-20절에 거라사에서 귀신들린 자가 무덤사아에 있는 것을 보시고 돼지에게 들어가게 하여 귀신을 쫓아내셨다. 또 벙어리 되게 한 귀신(마9:32-34)과 눈멀고 벙어리 되게 한 귀신(마12:22-24), 이방여자가 자기 딸의 귀신들린 것을 고쳐달라고 한 사건(막7:26), 귀신으로 인해 간질병에 든 어린아이에게 명령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일(막9:14-29) 들이 기록되어 있다.
사도시대에는 예수께서 제자를 뽑을 때나 파송할 때에도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고(마10:8, 막3:15), 제자들도 복음을 전하고 돌아와서 보고할 때에도 귀신을 쫓아내었다(눅10:17)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른다고 말하므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님의 권세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막16:17). 성경은 귀신과 씨름하지 말고 예수이름의 권세로 대적하라고 말한다(약4:17).
프란시스 헌터는 중풍병의 ‘죽음의 악령’을 쫓아내고 막힌 혈관을 뚫리게 함으로써 병을 고친 경험을 말하고 있다. 먼저 축사를 한 후 치유기도를 하면 질병이 쉽게 낫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예수의 이름으로’라고 말할 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능과 권세로 직접 사역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해야 하며 마귀의 일을 파괴시키라고 부탁하신 것이다. 귀신을 쫓아낼 때 담대하게 믿음으로 “마귀(사탄)야, 내가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 하나님의 권능으로 너를 묶노니, 너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올지어다!” 라고 선포하고 명령하는 것이다. 피터 왜그너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능력기도를 통하여 전도여행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사단이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역사를 행하기 위해 배치하는 다양한 유형의 귀신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아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이 영 적 전투 전략은 출장 전도에서 최우선의 위치에 올려 놓아야 한다. 이것 이 중요한 이유는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귀신을 쫓는 것이 효과적 인 전도에 역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다.
도리스 와그너는 귀신이 들어오게 되는 침입지점을 유전적인 영, 거절감, 희생자, 비술적인 행위들로 보았다. 그 중에도 유전적인 영은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 있거나 거절감, 자살, 근심, 우울증, 음란, 마약이나 알콜 중독, 손금을 보거나 별점을 보는 조상을 가진 경우와 같이 가계에 있는 파괴적인 행동들의 뿌리의 형태들이다. 이러한 축귀사역에 있어서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것이 용서이며, “예수”라는 이름의 위력이라는 것이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모든 악한 영들의 세력을 파하고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2. 예배와 말씀을 통한 치유
1. 예배를 통한 치유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이 준비되어야 하고, 음악과 찬양이 있으며, 성도의 교제와 기도와 감사와 회개와 중보와 말씀선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의식이다. 터너는 예배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인들이 모인다는 것은 이미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예배 의식 속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종류의 치유가 일어나게 마련이다”고 한다.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외로움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깨달아 과거의 죄책감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희망이 생겨 슬픔이 치유되고,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인식할 때 감사가 일어나며, 예배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때 삶의 모든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터너는 예배드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되고 그의 사랑과 지혜와 권능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몰두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에 대하여 많이 생각할수록 더욱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치유를 베푸실 조건이 생기게 된다고 하였다. 예배를 통한 치유가 일어나는 순서가 첫째로 육신을 편안히 하고 긴장을 푼다. 둘째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기의 마음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기대한다. 셋째로 두려움, 분노, 근심, 죄의식에서 자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다. 넷째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형상화한다. 다섯째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준비될 때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과 찬송을 통하여 우리의 최고의 열망이 표현되고 영혼이 자유로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더불어 찬송은 내적인 긴장을 풀어준다. 또 목회기도를 통해서도 기도 속의 찬양과 감사와 회개와 중보의 내용과 일치할 때, 그리고 설교를 통해서도 긍정적이며 확신있는 태도가 일어날 수 있다. 진정한 예배는 강력한 치유를 일으키며, 성찬예식을 통해서도 치유가 일어난다. 하나님과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하나님이 나를 향하고 계심을 알면 치유가 일어나며, 죄의식에 빠진 사람이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선포를 통하여 마음과 영혼과 육체가 치유를 받게 되는 것이다.
2. 말씀을 통한 치유
예수님은 자기의 공적 생애 가운데 말씀을 사용하여 마귀를 물리치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다. “말씀”에 대한 신약성서의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마15:6), 주의 말씀(시119:9), 은혜의 말씀(행20:32), 진리의 말씀(고후6:7), 생명의 말씀(빌2:16)으로 나타난다.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고 하였으며, 사도바울도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사용하여 치료한 말씀이 바로 이러한 말씀인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으며,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결단해야만 하였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병든 자는 치료를 받았고, 죄인은 용서함을 받았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 복음의 말씀,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을 선포해야 하며, 예배나 기도 중에 어떠한 상황에서나 하나님께서 치료에 관련하여 지시하시는 말씀이 있다면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말씀을 선포하면 그대로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말씀을 통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설교자의 성령 충만한 생활에서 나온다. 성령이 우리를 통제하고 지배하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항복할 때에 우리를 붙드시며, 설교할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축복한다. 바인스(Vines)와 샤딕스(Shaddix)는 성령 충만한 삶으로서의 기름부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은 설교를 준비하는 시작 과정부터 이미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말하였다. 말씀 선포시간에 성령의 능력을 부여하시는 느낌은 대체로 자유함, 생명력, 성령에 붙들림, 기쁨과 평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3. 매개체를 통한 치유
사도행전19장12절에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기록하였고, 야고보서5장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하신 말씀은 손수건이나 앞치마, 기름 등이 매개체를 통하여 병을 고치는 경우이다.
치유의 능력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을 때 능력의 도구로 사용되며 이러한 매개체는 믿음을 유발시킬 뿐이며 자체로서의 치유능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랜 병중에 있는 자나 기도받으러 올 수 없는 환자들, 복음을 거부하여 직접 대화하기 힘든 경우에도 믿음을 가지고 이 방법을 사용하면 치료의 효과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마술적 신앙에 빠지게 하는 염려가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지식인들에게도 역효과가 날 수 도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상황과 인도하심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의학의 활용
의술도 하나님이 배푸시는 은혜이므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이나 의학상식을 초월하여 치유사역을 하시므로 의학과 병행하여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학과 치유기도와의 관계에 대하여 강태원 목사의 주장을 간추려 보았다.
첫째 모든 병을 치료하시는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의지하라(대하16:12-14).
둘째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믿음이 없는 경우나 너무 탈진하여 기도하거나 기도받기 힘든 경우에는 믿음이 자라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게 하며, 의학과 병행하여 치료하는 것이 좋다.
셋째 다양한 의학적인 지식을 소유하여 더욱 정확한 치유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기도나 치유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도록 한다.
넷째 병에는 의학의 한계가 있으므로 의학으로는 풀 수 없는 영적인 질병, 정신적인 질병, 사탄으로부터 오는 질병 등에 대해서는 필요시에는 병의 상태에 따라 의학과 병행하거나 단절할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의 방법과 능력으로 기도하면서 치료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섯째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병이 나았을 때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이다. 물론 자신을 위해 돌봐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신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히브리서4장16절 말씀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시며 예수님은 신유를 행함으로 사랑을 나타내셨다.
일반의학이 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치유하는 일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과 영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것은 복음만이 가능하며 전인을 온전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만이 전인을 온전케 하는 특권과 권세와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았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이 영의 문제와 악령의 문제를 다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직 고치지 못하는 마음과 육체의 질병이 무수히 많다. 그러므로 신유와 의학은 상호 협력하고 융화하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유기도자는 병든 자의 증상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전인치유를 위하여 사역해야 할 것이다.
다음 글에는 치유사역의 영역 및 실제와 마지막 결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이란 무엇인가? (1부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 (3) | 2023.09.25 |
---|---|
선교의 관점에서 본 치유사역의 이해와 실제-2 (2) | 2023.09.21 |
선교의 관점에서 본 치유사역의 이해와 실제 (2) | 2023.09.20 |
총체적 치유의 관점에서 십계명을 통하여 본 회복된 이후 나의 가족이 나가갈 방향 (2) | 2023.09.15 |
나의 가족의 총체적 회복 현상들 (0) | 2023.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