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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원리

상담학적 관점에서의 인간

by deuga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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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담과 기독교

 

1) 자신과의 관계

모든 사람은 상호관계성을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자기중심의 인간관계를 나와 그것의 관계라고 설정하며, 자기가 모든 인간관계의 중심이면 다른 사람들은 부수적인 사람으로 받아 드려서 인격체가 아닌 물건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관계는 외적인 요소를 중요시하여 사람을 표면적으로 판단함으로 상처를 받게 되고, 공감을 가지지 못하는 인간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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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것에 대한 관계가 목적만을 지향하고 인간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은 불안하여 존엄성에 상처를 받게 되고, 수직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인간은 자신에 대해 집착하여 자기 흡입(self-absorption)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침체성으로부터 현대인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근본적인 신인일치단계를 추구하거나 새롭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나 개인의 수용을 추구하는 것이다.

 

에릭 프롬(Erich Fromm)은 이러한 관점에서 자기중심성이 강한 현대인에게 권위주의, 가학성 성욕(sadism), 피학대 음란증(masochism), 파괴성, 비판 없는 대중의 자동일치(automation conformity)와 같은 현상을 주의하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파괴적인 요소들이 공통적으로 스며들어 있으며, 잘못된 삶의 결과이고, 고립, 분리, 존엄성 위협과 상실, 불안 등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을 하나의 물건으로 비인간화하는 개인이나 사회적 분위기는 바로 우리 개인들에게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돌출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2) 타인과의 관계

생산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부류는 처음은 잘 풀리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곧 황폐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 시작은 어려우나 사람의 잠재적 가능성을 체험하게 되고 관용과 격려 속에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기와 타인이 중심이 되는 관계속의 인간이다. 이것은 모든 경험의 결과가 서로의 수평적인 사고와 상호관계를 통해서 온다는 사실이다.

 

상호관계성을 가지면 나의 것과 비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상태가 되고 민감성의 발휘와 상상을 통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적극성을 가지게 된다. 이때에 비로소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대화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나와 너 사이에 진정한 대화를 위해서는 자신을 완전히 열어서 공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개인은 자신의 고립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3) 하나님과의 관계

내적 일치가 있는 단계는 나와 이웃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단계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인간이 가진 세 가지 본질적인 죄는 교만(hubris)과 불신앙(unbelief)과 음욕(concupiscence)이라고 말하였다. 교만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무한한 평가를 하는 것이고, 불신앙은 인식의 영역, 의지의 영역, 감성영역에서 무한대의 것으로 표현하고 소유하려는 자기흡입적인 생각이다.

 

음욕은 개인이 가지는 허전함과 공허를 채워 보려는 욕구이다. 돈 주안의 절제되지 않는 욕망, 네로황제의 권력 집착,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은 악마와 목숨을 바꾸는 협정이나 프로이드의 리비도, 니체의 권력의 의지가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틸리히가 지적하는 인간적인 본질적인 죄는 바로 마틴 부버(Martin Buber)가 지적한 우리 안에 악으로 존재하며, 내적 분열을 일으키는 요소이다.

 

틸리히는 새로운 피조물(new being)에 대한 기대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내적 분열에 대한 극복을 강조하였다. 부버 역시 궁극적으로 나와 이웃이 하나가 되게 하는 동기부여 자는 하나님임을 강조하지만 최소한 이러한 관계의 형성을 위한 인간의 노력의 중요성을 말한다.

 

목적의 부재와 상실은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인 불안과 질환을 발병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최종 목적과 궁극적인 삶의 존재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삶이며, 개인의 생존을 뛰어 넘는 이웃사랑과 하나님 사랑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결단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삶만이 건강한 삶을 보장해 줄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인정할 때 하나님이 인간 가운데 나타날 수 있고, 인간 상호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방법으로 인간에게 나타나시게 된다. 개인이 심리적,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상호 유기적으로 관계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 삼각관계성 안에 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2. 공감과 하나님의 형상

 

공감과 반대되는 태도는 자신이 이미 평가하거나 익숙해져 있는 방법으로 상담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어 더 이상 외부의 세계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게 된다.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심리치료에 있어서 공감은 내담자의 심리적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도구로 내담자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공감이 없으면 사람은 정신적인 생존이 불가능 하다. 그리고 상담을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내담자에게 강력한 심리적 애착(psychological attachment)을 불러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공감을 가지고 사역을 시작하셨고,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감의 원래적인 의미는 남의 신발을 신고 걸어본다는 의미와 같은 표현이다. 신학과 심리학을 고려한 목회상담학의 입장에서 보는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공감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정신이 공감으로 표현되었으며, 이 공감의 중요한 핵심은 바로 사람과의 관계성의 회복이다.

 

이와 같이 공감은 상담심리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마음을 적합하게 서술하는 용어이며,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행해야할 요소이며, 상담심리학과 신학이 유기적인 중요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주는 중요한 용어이다.

 

칼 로저스(Carl Rogers)는 환경이 악하든 선하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며 재탄생시키려는 노력을 한다고 하였다. 내담자나 상대 대화자에 대한 신뢰는 존엄성을 인정받을 때 돌봄과 성취를 체험하게 되고 공감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이해하는 시각은 곧 자신의 신발을 벗고 타인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내담자에게 심어주는 것이 바로 공감인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다. 상담에서 경청의 역할과 필요성은 말하는 사람과 동시에 듣는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내담자의 아픔을 끌어내어 토로하도록 하고, 진실 된 고백을 하게하고,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돌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내적인 일치를 맛보게 되므로 만족을 얻게 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삶의 이야기이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할 때 비로소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3. 상담학적 인간

 

1) 창조 원형으로서의 인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창조 원형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께 의존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순간부터 상담이 필요한 존재였다. 사람은 누구나 두 사람 이상과 대화를 하고 있으며, 그 대화에는 반드시 상담적인 요소가 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최초로 받은 상담은 성경적 상담이었는데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하나님과의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의 모든 인간 활동에 적용될 문제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는 일이며,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많은 갈등과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부로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하셨을 때, 돕는 배필을 통하여 서로 간에 상담자와 피상담자의 의무를 가지도록 하셨다. 그것은 서로 필요한 상담자를 주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타락한 존재로서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상담자인 사탄()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죄를 범하게 되어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거나 만지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였으나, 사탄은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질문하였을 때, 하와는 반드시 죽으리라가 아니라 죽을까 하노라고 하면서 사탄의 상담에 분별력이 흐려져서 마음을 빼앗겼고, 사탄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결국 하와는 나쁜 상담자의 말을 듣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고 난 후 인간의 일상생활에는 나쁜 상담자들이 많이 찾아오게 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사탄의 상담을 통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와가 사탄에게 나쁜 상담을 받았다면 즉시 하나님과 상담을 통하여 하나님의 돌봄과 인도함을 받아야 했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오히려 남편인 아담에게 잘못된 상담을 동의하게 하여 함께 죄를 짓도록 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금지한 것임을 알면서도 거절하거나 물리치지 못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이므로 함께 그 열매를 먹고 나서 눈이 밝아져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상담은 숨고 덮고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빛 되신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깨어지고,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마저 깨어지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므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대로 살게 되어 질병과 죽음이 생겨났고,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므로 이웃과 사회의 인간관계가 신뢰를 잃게 되었다. 또 환경과의 관계가 무너져서 땅이 저주를 받게 되자 인간은 이 아닌 땀 흘리는 수고를 하게 되었고, 자연이 병들고 파괴되었다.

 

지금도 가정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마다 인간들의 삶의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가시덤불과 엉겅퀴 때문에 많은 상담이 요구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으로 영원한 인간의 실존이 죽을 수밖에 없는 실존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3) 회복된 인간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시며 인간들을 잃어버린 자로 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존재가 된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상담을 성육신의 상담이라고 한다.

 

위대한 상담자이신 하나님은 인간이 벗은 몸이 부끄러워 나뭇잎으로 대신 가린 것을 보시고, 에덴에서 짐승을 잡아 인간에게 가죽옷으로 대신 입혀 주셨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장차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심으로 영원한 회복을 위하여 구원의 옷을 만들어 주셔서 그 옷을 입을 때만 인간은 죄로 인한 부끄러운 실존을 감출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된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성경적 상담은 부끄러운 인간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상담자에게 그리스도로 옷을 입을 때까지 상담해 주어야 하며, 그 옷을 더럽히지 않고 성화에 이르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 임시방편으로 심리적 안정을 주기위한 상담도 고려해야 하지만, 상담을 빌미로 피상담자의 옷을 벗겨서 그를 더 부끄러운 실존으로 만들어 버리는 상담은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이다.

 

4. 인간 실존으로서의 마음

 

마음을 보면 상담심리학적으로 인간을 보다 자세히 관찰 할 수 있다. 상담심리학적 관점에서는 마음이 곧 인간이라고 본다. 인간을 알려고 하면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아야 한다. 인간의 외적인 모습이 아닌 마음이 인간 실존이다.

 

인간의 모든 말과 행동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정신은 뇌 구조로, 마음은 보다 내면적인(심장) 것으로 이해하지만 분명한 정의는 어렵다. 어원적으로 번역을 해서 우리말로 쓸 때는 정신마음을 같이 쓰기도 하지만 그 두 단어는 분명히 문맥에서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철학자들과 뇌 과학자들은 의식(consciousness), 자기인식(self-awareness) 또는 자기에 대한 자기 경험(my experi-ence of me)과 관련을 가지는 어떤 것을 정신이라고 제안한다. 이 정의는 나(I)는 어쩔 수 없는 본능에 의해 움직여지는 단순한 무엇(some-thing)이 아니라 주인공이라는 점을 승인한다. 무엇을 결정할 때 결정의 주체는 나 자신이며, 그 일을 할 때 목적을 가지고 한다는 뜻이다. 마음에 대한 이 견해는 기억하고, 계산하는 능력을 전제하지만, 단순히 기억하고 계산하는 능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거나, 숫자를 계산하는 주체가 바로 (I)’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마음은 마음 자체를 반영한다.

 

마음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자기 인식으로서의 마음의 개념과 의도성으로서의 마음의 개념을 포함하는 동시에 그 이상의 의미도 있다.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든지 또는 거역하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 책임져야 하는 존재이며, 그에게 응답해야 하는 존재이다.” 윤리와 관계된 선악 간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화병 상사병은 마음에서 오는 병이다. 마음이 상하면 생기를 잃어버린다. 이것은 심장과 마음 사이에 어떤 정서적인 교감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심장은 진정 사람 정서(human emotion)의 근원(a seat)이라고 한다. 성경에도 마음에 숨은 사람을 속사람이라고 하듯이 인간의 마음이 정신과 다른 본질적인 속사람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6:5-6)”라고 하셨다. 이 말씀 가운데 마음이 곧 심장(Heart)을 가리킨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였으므로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상담은 모두 인간의 마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는 모든 질문은 인간의 마음을 향한 질문이었다. 이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인간은 마음이라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이렇게 마음에 악한 계획을 한 인간들이기에 모든 생명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모든 인간들의 역사는 살고 죽는 역사였다. 즉 인간 실존의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며, 죽을 인생이 영생할 인생으로 바뀌게 하였고, 하나님(예수)이 죽으시고 인간을 살게 해주신 사건이다. 그 선택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있다. 성경적 상담은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할 실존이 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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