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분법과 삼분법으로 본 인간 구조와 기능
전통적으로 기독교 인간학에서는 인간을 이분법과 삼분법으로 이해하였다. “인간이 영(ruah, pneuma)과 육(basar, sarx)의 두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여기거나, 영(ruah, pnewma), 혼(nephesh, psyche), 육(basar, sarx)의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살전 5:23)”고 인식해 왔다. 일분법적 인간관은 “몸과 혼과 영은 인성을 분리할 수 있는 다른 기관들이나 기능들이나 부분들을 지칭함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을 다른 관점으로부터 이해하고 표현한 것뿐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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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구조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견해는 이분법(dichotomy)이다. 몸과 혼으로 구성되어 있고, 삼분법보다 더 폭넓게 주장되어 왔다. 하지만 Antony A. Hoekma는 “플라톤은 영혼과 육체는 두 개의 구별된 본체, 즉 신적 기원을 갖는 사고라는 영혼과 육체라는 견해를 제시했었다. 육체는 질료라 불리는 열등한 본체로 구성되어 있기에, 영혼보다 저급한 가치를 갖는다. 임종 시 육체는 단순히 분해되어 버리나 이성의 영혼은 만약 그 영혼의 행위의 과정이 올바르고 존경을 받을 만 했다면 ‘하늘’로 되돌아가서 영원히 계속적으로 존재한다. 영혼은 본질상 파괴될 수 없으며, 보다 우수한 본체로 생각된 반면에 육체는 영혼보다 열등하며 죽게 되어 있으며 완전파멸의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헬라의 사고 속에는 육체의 부활의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고 하면서 이분법의 거절을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breath of life)를 코에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7). 일반적인 인간 이해는 삼분법(trichotomy)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견해는 성서에 따르면 “인간은 몸과 혼과 영혼으로 이루어졌으며, 최초의 주장자들 중의 하나가 이레니우스였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 Watchman Nee는 “생기가 사람의 영(spirit)이 되어 몸에 접촉되자 혼(soul)이 생겼다. 이런 까닭에 혼은 사람의 몸과 영이 결합되었다. 그러므로 성서는 사람을 ‘생령(생혼)’이라고 부른다”고 하여 혼과 몸이 영과 결합되고, 영과 몸이 혼에서 완전히 융합된 것으로 보았다. Charles R. Solomon도 삼분법에 기초하여 “인간은 몸을 통해서는 환경과, 혼을 통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영혼을 통해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고 말 한다. Kenneth E. Hagin은 인간의 세 가지 본질을 요약해 놓았다. “영은 영적 영역(the spiritual realm)을 다루는 인간의 차원, 하나님을 아는 인간의 부분(the part of man)”이며, “혼은 정신 영역을 다루는 인간의 차원, 지성, 감성과 의지, 논증하고 생각하는 부분이며, 몸은 물리 영역을 다루는 인간의 차원, 우리가 사는 집이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혼을 가지고 있고 몸 안에 사는 영적 존재이며,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아는 부분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부류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영이시고 하나님이 사람으로 당신과 교제하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예수는 선택된 인간 본질의 원형이며, 인간 본질의 처음과 미래이다. 인간이 그리스도 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불가능하며, 인간의 본질과 그 운명은 그가 없이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J. Moltmann은 “인간만이 초월적인 하나님과 내재적인 세계의 매개자가 되도록 초청되었다”고 하였다. 우리가 영과 혼을 구분하는 이유는 이것을 믿는 이들의 영적 생명과 매우 많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믿는 자들이 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모른다면 영에 속한 생활을 이해할 수 없고, 깨닫지도 못하며, 영적인 생활 가운데 자랄 수도 없게 된다. 믿는 자들이 영과 혼을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생명은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지 못하고, 혼에 속한 것을 영에 속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영에 속한 것을 더 추구하려고 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혼에 속한 생활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의 두 가지 다른 실체적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견해가 이분법이다. 물질적인 부분과 비물질적인 부분인 육체와 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혼과 영 사이에는 본질에 있어서나 기능에 있어서 어떠한 존재론적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이분법 지지자들은 실제로 “우주에는 오직 물질과 비물질만 있을 뿐이므로 혼과 영은 서로 다른 본질일 수 없다”고 하였다. 삼분법의 인간은 “종종 세상에 관한 의식을 전달하는 것은 몸이고, 자의식을 전달하는 것은 혼이며, 신 의식을 전달하는 것은 영이다”고 말하며, 몸과 혼과 영이 명백히 구별되는 세 요소로 구성되었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간 안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영은 자연적으로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 얻은 선물이다. Horst G. Pohlmann는 은총을 입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적 인간도 하나님을 닮았으며, “자연적 인간도 비록 흐려지고 희미하며 불분명한 거울이지만 하나님의 거울이다”고 하였다. 자연적 인간은 그의 대화 능력, 동료 인간과 하나님과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능력 속에서 하나님을 반사한다. 그래서 첫 인간이 살아 있는 영혼(psyche)이 되었고,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pneuma)이 되었다(고전 15:45).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인 것이다.
2. 이분법과 삼분법의 한계
인간을 개체로 보거나 사피엔스 종으로 분류하여 본다면 동물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사피엔스의 종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인간을 삼분법에서 주장하는 영과 혼과 몸이라고 구분하는 것도 개체로 보았기 때문에 진리처럼 굳어져 버렸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한 개체의 종이 아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을 만들어 다스리고 관리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조를 볼 때 영과 혼과 몸과 함께 환경도 포함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의 관계에서 택함을 받고, 구별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 3:12), “또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출 8:2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출 11:7)고 하셨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환경이었기 때문에 6일 동안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거기에 사람을 두었다.
삼분법에서 영의 영역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Paul Tournier는 Diagram(Bibliography, No.7)을 (그림 5)와 같이 “인간의 구조를 개방체계 대 봉쇄체계”로 나타내었다. A, B, C에서 받은 각각의 영향이 중심부의 영(Spirit)으로 전달되고, 또 그 반대도 역시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그림 5) Paul Tournier‘s Diagram
Watchman Nee도 (그림 6)와 같이 “영(Spirit)은 성령(Spirit가 Holy)과 악령(evil spirit)이 작용하는 좌소(locus)로서 영이 받은 영향을 혼으로 전달하고, 혼에서 발생하는 영향을 몸으로 전달하여 활동한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림 6) Watchman Nee's Diagram
그러나 타락하기 전에는 “혼은 그 수많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영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전히 원하시는 순서이다. 첫째로 영, 다음에 혼, 끝으로 몸이다”고 하였다. 또 그는 생령이 된 인간은 “육체를 통하여 외부 감각 세계와 관계를 맺게 하고, 혼은 우리로 하여금 자아와 관계를 갖게 하며 자의식을 주고, 영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한다”고 하였다.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혼은 생령이며, 몸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명수는 (그림 7)에서 영과 마음과 몸이 부분적인 영향이 아닌 전반적으로 총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이분법에서의 영의 영역은 (그림 8)과 같이 영혼과 몸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으로 이해하여야 하며, 삼분법에서는 (그림 9)과 같이 영과 혼과 몸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으로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몸 안에 영과 마음이 있다는 것으로 본다면 좁은 의미로만 이해한 것으로 보여 진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는 성서의 말씀을 통하여 보면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고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몸 안에 갇혀있듯이 있지는 않다고 본다.
(그림 7) 이명수의 Diagram
(그림 8) 이분법의 영
(그림9) 삼분법의 영
우리의 몸은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몸을 통하여 마음은 생각이나 상상으로 모든 자연계의 어느 곳에든지 갈 수 있다. 하는 일은 건성으로 하면서 신경은 다른데 쓰는 경우, 마음이 콩밭에 있다는 말을 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행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보다 더 넓은 영역이 마음이고 마음보다 더 넓은 영역이 영(사람의 영)이다. 이 영(사람의 영)은 성령(하나님의 영)의 통치 안에서 활동하는 영이다. 영(사람의 영)보다 더 넓은 것이 성령(하나님의 영)인 A영역이다. 환경은 영(사람의 영)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지만 성령(하나님의 영)과 함께 한다면 어느 곳이든지 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타락한 이후로 성령의 임하심이나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곳이 (그림 3)의 B와 같은 영역이다.
(그림 3) 새로운 패러다임
박형렬은 “주님의 사역은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의 갈등을 치유하고 조화를 이루어 총체적이며 온전한 구원사적 치유와 성화의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L. S. Thornton은 “코이노니아는 ‘개인들 사이에서 상호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목표 속에 동참하는 것을 포함하는 관계”로 보았다. Hendrikus Berkhof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시는 길이 된다고 하며, “연합의 목적은 새사람의 예언이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존재로서 공동체를 이룩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과 혼과 육의 다른 실체이며,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혼은 생령,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사람은 영과 혼과 몸의 연합된 통일체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영의 영역에 있어서의 이분법이나 삼분법은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가능한 일이지만 거시적이고 총체적 관점에서는 고려해야 할 약점이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형상으로써 총체적이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인간 구조의 관점을 이분법이나 삼분법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사회 환경과의 관계에 대한 연관성을 풀어나가거나 영(사람의 영)과 성령(하나님의 영)을 구분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영에 대한 고전적이고 일반적인 이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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