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의 원리

총체적 치유 대상으로서의 인간

by deuga 2023. 9. 1.
반응형

1. 총체적 치유

 

일반적으로 현대 의학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병리학에 근거하여 육체와 정신에서 찾아서 치료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으므로 성서에서는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한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4),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2)고 하였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김찬기는 “성서에서 말하는 치유란 단지 육체적인 치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인 치유는 물론 죄의 용서와 구원 그리고 정신적이고 영적이고 사회 공동체적인 차원(환경)까지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치유로 보았다. 이명수는 “치유선교의 대상은 인간과 인간이 몸담고 사는 사회(환경)이다. 이 사회라는 개념 속에 인간 공동체와 환경과 자연을 포함시킨다”고 하였다. 김남수는 “치유의 출발은 오늘도 우리가 치유 받고 온전하길 바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전인적 치유를 베푸시길 기대하는 믿음과 확신 아래에서의 재창조와 정상 회복의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미래에 완성될 그 나라의 축복이 현세에서도 부분적으로 체험되고 있다. 복음 선포를 통하여 치유가 일어나고, 귀신들이 쫓겨나가는(마 9:33)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현재 활동하고 있다는 징표다. “총체적 치유 사역에서는 육체를 위해서는 의학적 치유(돌봄)가 필요하고, 정신을 위해서는 상담심리적인 치유(돌봄)가 필요하며, 영적인 것을 위하여 목회적 치유(돌봄)가 필요하고, 사회 환경적인 것은 사회적 치유(돌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치유 사역이란 인간의 영과 마음과 몸이 병들고 부조화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하여 돌보아 주고 치료해 주는 일을 말한다. Poul Tournier는 “정확한 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과학적 객관성에 의한 물리적 요인과 정신적, 영적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세 요소는 상호 영향을 미치므로 균형이 깨어지고, 평형이 깨어지면 질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성서에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는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대속의 치유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취하셨듯이 동일하게 우리의 질병을 취하여 가져가셨다는 것이다. Andrew Murray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뿐만 아니라 질병을 짊어지신 것이 구원자의 가장 핵심적인 사역이다"고 하였다.

양자 물리학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다고 단정했던 원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가 아니며, 양자와 중성자가 원자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김영준은 세상의 물질은 모두 원소가 얽힌 것으로 보아 전인치유를 강조하면서 “인간의 치료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인 ‘영의 치유’와 원자가 엮인 ‘육의 치료’가 필요하며, 이런 치유가 바로 ‘전인 치유’이다”고 하였다. Oral Roberts도 치유 운동을 일으킨 미국의 대표적인 치유 사역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치유 메시지는 실제적이어서 “오른 손에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로 하여금 경미한 질병부터 말기 암 중환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각종 질병을 낫게 하는데 확신을 주었다”고 한다. John Wimber는 “복음을 확증하고 동시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치유의 목적이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치유는 성령님의 능력과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사역하셨다. 예수님은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한량없이 받으심으로(눅 3:21-22; 4:18-19, 요3:34)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치유 사역을 하신 목적은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보고 긍휼히 여기셔서 치유해 주셨고(마 9:35-36),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하기 위하여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다(요 11:1, 눅 5:17-26). 그리고 자신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신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것과(마 11:4-6) 병든 자들이 부르짖는 기도와 그들의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치유하셨고(막 7:25-30; 10:26-52),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표징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다(마 12:22, 눅 4:40-44). 또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병을 고쳐주셨고, 기적을 행하셨고(눅 10:8-12, 요 20:30-31),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치유 사역을 하셨다(행 5:12-14).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치시고, 치유하시고, 선포하신 것을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2. 총체적 치유의 목적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의원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막 2:17)고 말씀 하셨다. 죄인을 불러 구원하는 것이 곧 질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명수는 치유 사역의 전제 7에서 “치유 사역의 궁극적 목표는 타락하고, 병든 인간과 사회를 회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는데 있다(계 21:1-4). 즉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치유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하고 조화로운 상태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규율 하에서 온전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의 안에서 평등하게, 사랑 안에서 평화롭게 더불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이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이 목적과 일치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생활이다. 이 목적을 떠난 육체적, 도덕적, 영적 생활은 건강을 해치는 잘못된 생활이다. “치유 사역자는 단순히 질병만을 치유해서는 안 되며,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 속에 들어가서 온전히 그 뜻을 준행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며(고후 5:17),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고(요계 21:1),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다는(요계 21:4)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이시고(요 14:6), 의로우시고(골 4:1), 사랑(요일 4:8, 16)이시기 때문이다.

 

3. 총체적 치유 대상으로서의 인간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은 신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생태학자, 의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연구되어 왔다. 성서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4-16)고 하여 병든 사람을 구원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았다. 특히 의학자들은 치료의 대상인 인간을 해부학적으로 보았다. 대부분의 포유동물과는 달리 “인체는 두 발로 보행하기에 알맞게 되어 있으며, 구조에는 세 가지의 원칙이 있어서 척추와 늑골과 같이 거의 같은 모양의 뼈로 구성되는 분절구조의 원칙, 신체의 좌우는 정중선에 의해 갈라지는 좌우대칭의 원칙, 신체의 일단이 두부, 다른 일단이 체지인 양극성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Sigmund Freud는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unconscious)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것을 변형시킴으로써 인간이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인간을 지배하는 힘은 무의식의 세계이며, 인간이 성장하면서 얻는 경험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잔재와 회상을 갖게 하므로 인간의 현재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충격적인 경험이 무의식 안에 억압되어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는 의식적으로 통제받고, 무의식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므로 인간을 통제하는 원천적인 힘은 무의식적인 과정에 있으며, 이에 대해 인간은 전혀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Alfred Adler는 “완성을 향하는 통합된 인간으로 자기일치(self-consistent)된 존재이며, 개인이 표출하는 삶의 표현 방식은 그 개인의 전체적인 성격과 연관지여 생각해야 하며, 정신과 신체의 관계도 분리해서 별개의 것으로 여길 수 없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은 대립적인 요소가 아니라 삶의 유형을 통일시키려는 움직임 하에 작동하는 상호 보완적인 요소로 보았다.

Reinhold Niebuhr는 “인격과 개인성에 대한 기독교 개념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에 결정된 하나님의 자기 현현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에 의해 인간은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자신의 목적을 발견하는 의지의 통합체로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므로 인간은 스스로 창조되지 않았고, 인간 자신이 최종적인 삶의 목적도 아니라”고 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며,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위한 존재이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소통,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해서 창조된 것이다. 그래서 영적이고, 자연적인 인간을 강조하였고, 죄인된 인간이므로 여전히 불안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사고와 행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Reinhold Niebuhr의 사회학적이고 현장적인 인간이해는 “기존 심리학에서 이해하는 인간의 잠재성과 가능성에 대해 일침을 놓고 있으며, 신학에서 다루는 인간 이해의 큰 틀을 제공하는 전통적 해석의 모순점과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해부학적이 방법이든, Freud의 무의식의 욕구이든, Adler의 완성을 향하는 통합된 인간으로 자기 일치된 존재이든, Niebuhr의 사회 신학적 인간이든 어느 한 쪽 편에서 인간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명수는 전제 6에서 “인간의 건강 혹은 질병은 인간이 몸담고 사는 사회와 상호 영향(Mutual impact)을 주고받으며, 몸의 병, 정신의 병, 영의 병 및 사회의 병 사이에는 병을 유발시키는 원인들이 상호 작용함으로 본다”는 것이다. 성서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실천학문으로서 병든 이 시대의 사람과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육체적, 정신적, 영적 그리고 사회 환경적인 상태에서 복음으로 회복되는 통합되고 총체적 치유 대상으로서의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4. 총체적 치유 체계

 

이명수는 총체적 치유 체계를 (그림 1)로 보았다. 몸은 의과학적 돌봄, 마음은 심리·상담학적 돌봄, 환경은 사회적 돌봄, 영은 목회적 돌봄으로 정리하였으나, 마음을 중심에 두는 돌봄의 관계를 수정하여 (그림 2)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사회 환경을 주변으로 배치시켜 보완하였다. 마음 대신 하나님으로 대체하고, 사회 대신 마음으로 대체하며, 인간은 영과 마음과 몸을 이어주는 원으로 대체를 하고, 사회는 기본적인 단계로 인간을 포함하는 돌봄의 관계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체계가 구조상으로는 상호작용이 있어 보이지만 인간을 구조별로 분리하여 돌봄의 관계로 표현한 점이 약하다. 그리고 사회를 포함한 환경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연관성이 부족해 보인다.

이에 (그림 2)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인간의 영과 마음과 몸을 하나의 통일체로 보아야 하는데 분리한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둘째, 사회적 돌봄에 대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나 인간과 관계를 형성하는 중심 구성요소가 없다. 셋째, 하나님이 영과 마음과 몸과 사회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관계는 총체적 돌봄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인간의 구성요소 상호간에 따른 주도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취약한 점이 노출되고 있다. 넷째, (그림 2)를 3D로 이해하여 위에서 본 평면도라고 생각하고 중앙을 하나님, 그 다음은 인간의 구조를 영과 마음과 몸, 제일 아랫부분이 환경으로 자연과 공동체를 사회로 표현 할 때에도 사회 환경이 기초적인 배경으로 인식되는 형상이므로 하나님 중심의 돌봄이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4가지의 돌봄에 대한 총체적 체계도 필요하지만, 각각의 돌봄에 대한 총체적인 상호관계성도 연구해야할 과제라고 본다. 육체를 위해서는 의학적인 돌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사람의 영)과 마음과 사회와의 관계성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상호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것은 향후 해결해야할 연구과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림 1) 총체적 치유 체계

예를 들면, 의·과학적 돌봄의 관계에서 육체와의 관계 50%, 하나님과의 관계 20%, 마음과의 관계 10%, 영(사람의 영)과의 관계 10%, 사회 환경과의 관계 10%와 같은 구체적인 리서치와 분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호관계에 대해서 총체적 치유가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

(그림 2) 총체적 치유(돌봄) 도표

(그림 3)은 인간의 구성요소 중, 영을 성령(하나님의 영)과 영(사람의 영)으로 구분하였으며, 환경을 폭넓게 보아 창조된 자연과 사회 공동체, 그리고 가상공간까지 포함하였다. 인간의 구조는 몸, 마음, 영(사람의 영), 성령(하나님의 영), 환경으로 구성된 5분법으로 구분하였고, 각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총체적 치유의 돌봄의 체계를 (그림 4)에서 나타내어 보았다. (그림 3)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인간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는 제3장에서 자세하게 다루었다. (그림 2)로는 다른 돌봄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과제에 대한 총체적 치유 체계의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그림 4)를 통하여 인간의 구조와 돌봄의 관계를 고찰해 보려고 한다. 총체적 치유의 돌봄에서 영과 혼과 육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인데 분리 적용하여 돌봄을 설명한다는 것은 각 구성요소에 너무 비중을 많이 둔 것이다. 각 돌봄의 대상 구성요소가 대표성을 띠는 것뿐이지 나머지 세 구성요소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넓은 차원에서 관계성을 고찰해야 한다.

 

의·과학적 돌봄

(그림 2)에서는 몸만 관계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몸만의 관계가 아닌 몸을 지탱하고 있는 성령(하나님의 영)과 정신을 함께 돌보아야 한다. C를 기초 배경으로 삼고, 환경 안에서의 몸의 영역인 H를 우선으로 보아야 하며, 그 다음이 몸과 마음의 상태인 F, 그 다음이 환경과 마음의 상태인 G를 살핀 후에 총체적 돌봄을 다루어야 한다. 천국의 소망과 용기를 주는 측면에서 B와 E부분은 조금 넓게, D부분은 조금 좁게 적용하여 총체적 돌봄을 다루었다.

 

심리·상담학적 돌봄

(그림 2)에서는 마음만 관계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마음의 관계가 아닌 영(사람의 영)과 몸의 관계, 영과 환경과의 관계도 포함해야 한다. C를 기초 배경으로 삼고, 환경 안에서의 마음의 영역인 G를 우선으로 보아야 하며, 그 다음은 몸과 마음의 상태인 F, 그 다음은 환경과 몸의 상태인 H를 살핀 후에 총체적 돌봄을 다루어야 한다. 천국의 소망과 용기를 주는 측면에서 D와 B부분은 조금 넓게, E부분은 조금 좁게 돌봄을 다루었다.

(그림 3) 인간 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
(그림 4) 인간 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돌봄

목회적 돌봄

 (그림 2)에서는 영만 관계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영(사람의 영)과의 관계라고 표현하였으나 영(사람의 영)의 속성은 몸과 마음을 통치하는 상위의 개념이므로 마음과 몸과 사회 환경까지 함께 돌봄이 필요한 광역의 관계라고 본다. 그러므로 C, D, E, F, G, H의 영역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C는 현재의 삶의 상태를 나타내므로 모든 돌봄의 기초이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그 다음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F이고, 그 다음이 환경 속에서의 마음의 작용인 G와 몸의 작용인 H라고 본다. 천국의 소망과 용기를 주는 측면에서 E와 D부분은 조금 넓게, B부분은 조금 좁게 적용하여 총체적으로 돌봄을 다루어야 한다. 목회적 돌봄에서는 영(사람의 영)과 몸과 마음이 포함된 영역으로 B를 뺀 나머지 C, D, E, F, G, H 부분이다. (그림 2)에서는 영만 관계하고 있었으나, (그림 4)에서는 성령(하나님의 영)이 통치하는 가운데 영(사람의 영)이 작용하며, 마음과 몸이 활동하는 가장 넓은 영역으로 의·과학적 돌봄과 심리·상담학적 돌봄, 사회적 돌봄이 골고루 모두 필요한 총체적 돌봄이 필요한 영역이다.

 

사회적 돌봄

(그림 2)에서는 사회가 영과 마음과 육체에 각각 관계하고 있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하나님과 사회와의 관계가 아닌 영(사람의 영)과 몸의 관계, 영과 환경과의 관계도 포함

하는 사회, 공동체, 자연의 모든 창조물이다. 특별히 몸과 마음과 영을 모두 포함하는 C를 기초 배경으로 삼고, 환경 안에서의 마음의 영역인 G와 환경 안에서 몸의 관계인 H를 균형 있게 다루고, 몸과 마음의 상태인 F를 살핀 후에 총체적으로 돌봄을 다루어야 한다. 천국의 소망과 용기를 주는 측면에서 B부분은 조금 넓게, D와 E부분은 조금 좁게 적용하여 총체적 돌봄을 다루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셨다(딤전 2:4). 타락한 이후에는 인간에게 주어진 C, G, H 영역에서 일생동안 환경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존재로 남겨두셨으나 B의 영역은 인간이 허락하지 않은 하나님만 아시는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 3:12),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출 8:2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출 11:7)고 이스라엘 백성과 그 지역을 택하시고 구별하셨다.

그러므로 각 돌봄의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통치하는 부분이 성령이시다. 성령(하나님의 영) A는 몸과 마음과 영(사람의 영)과 환경과 밖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신다. 영(사람의 영)은 마음과 몸을 포함하는 모든 부분임을 전제로 하여 돌봄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각 돌봄에서 C 영역이 공통으로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목회적 돌봄과 사회적 돌봄이 떨어져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목회적 돌봄의 영역은 사회적 돌봄의 영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돌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상호작용하는 부분이다. 즉 목회적 돌봄이 모든 돌봄을 총괄하는 가장 필요한 영역이며, 각각의 인간 구조에도 총체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함을 알 수 있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