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피조물이다. 성서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선 존재로 말하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말씀으로 인류역사는 시작한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과 모양대로 만드셨다(창 1:26). 신학적 인간은 인간의 출발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법이 있다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지으신 인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 명하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창 2:16-17)고 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법 안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John Calvin은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행위에 대하여,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관계하며, 만물 안에 있는 결정적 원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움직여지나 이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는 역행하여 일어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인류 전체 위에 나타나지만 그의 교회를 위해서는 특별하다. 가장 큰 일에서 가장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한다고 하였다.
창조 때의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심히 좋아하셨다(창 1:31). 이명수 교수는 ‘좋았다’는 상태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하고 조화로운 상태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규율 하에서 온전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의(義) 안에서 평등하게, 사랑 안에서 평화롭게 더불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이웃, 환경, 자신과 조화로운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하는 악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이다.
John Wesley는 타락한 인간에 대하여 아담의 죄로 인하여 그의 성품이 전적으로 타락하였고, 그의 영혼이 완전히 부패하였고,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창 6:5)고 하였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죽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고, 정신적, 영적으로도 죽음이 왔다. 나아가 환경과도 부조화하며 반목하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에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인간 실존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죄인을 위하여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눅 5:32) 것이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 이웃과 자연 환경까지 조화로운 상태에서 평화를 누리는 상태를 구원의 모습인 것이다.
2 죄란 무엇인가?
구약성서에서 사용된 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의 하타아는 ‘빗나감, 실수, 죄’이다. 레솨는 ‘사악, 혼란’, 아온은 ‘죄악, 사곡, 죄’, 폐솨는 ‘범죄, 반역’, 아웬은 ‘그릇됨, 분쟁, 헛됨’, 쉐퀘르는 ‘거짓말, 속임’, 동사의 아바르는 ‘범죄하다’가 있다. 즉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가고 이탈한 것을 죄라고 할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하마르티아로 ‘표적에서 빗나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가고 불순종하고 어긋나는 것을 죄라고 정리할 수 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요일3:4)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죄는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이거나 간에 하나님의 법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죄는 행위, 생각,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신 표준에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이다.
죄의 종류는 원죄와 자범죄로 나눌 수 있다. 원죄에 대하여 성서는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라고 하였다. 아우구스틴은 아담이 죄를 지을 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온 인류는 ‘죄의 덩어리(Massa Peccati)'이라고 하였다. John Calvin도 원죄란 인간 영혼의 구석구석에 두루 퍼져있는 바 본성상의 부패이다. 이는 아담에게서 그 후손에게 유전된다. 이 원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며, 이 원죄야말로 성서가 ’육체의 일‘이라고 부르는 모든 실제적 죄악들의 원천인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그래서 죄의 열매들이라 부르고, 그 예로서 간음, 도둑질, 증오, 살인, 방탕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원죄(Peccatum Originale)란 말은 유전적 부패성, 타고난 죄, 생래적인 죄, 악에의 경향성 등과 같은 동의어이다. 아담에게서 유전된 죄성이며, 이것은 악한 뿌리, 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자범죄(또는 고범죄)는 원죄의 뿌리에서 맺은 가지와 열매라 할 수 있다. 원죄와 자범죄는 서로 구분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원죄는 죄의 불가피한 보편성을 가리키며, 자범죄를 통하여 실현된다. 즉 원죄는 상태로서의 죄이며, 자범죄는 구체적인 행위의 죄이다. John Wesley는 하나님의 알려진 법에 대한 의지적 위반으로 보았다. 결국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다.
Gerhard는 자법죄에 대하여 자발적 죄와 비자발적 죄, 행위의 죄와 행하지 않음으로써 범하는 죄, 하나님을 버리는 죄와 피조물을 향한 죄, 내적인 죄와 외적인 죄, 마음의 죄와 입의 죄와 행위의 죄,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와 인간을 거역하는 죄, 육적 죄와 영적 죄, 숨겨진 죄와 드러난 죄, 용서 될 수 있는 죄와 용서 될 수 없는 죄로 8가지 종류로 분류하였다.
Kraft는 죄라는 용어가 언급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행동은 매우 좁은 범위에 속하는 것이지만, 성서는 죄를 더 단순하고 더 넓게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은 모두 죄이다(롬 14:23), 살인, 성적 문란, 강도질과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큰 죄들 외에도 불만을 품는 것, 용서를 거부하는 것, 분노와 원망을 품는 것(엡 4:31-32), 보복을 원하는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시기, 물질을 중시하는 것, 질투, 경쟁심, 이기심 등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죄의 결과로 아담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왔고,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였다. 죄책과 악에의 경향성을 가지게 되었고, 육체적 죽음과 자연계의 저주까지 받아서 자연과도 불화하는 존재가 되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1:15). 결국 죄로 인하여 인간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환경까지 총체적인 죽음이 임한 것이다.
3. 질병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인 의미는 병에 대하여 생명 있는 물체의 전체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겨서 정상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괴로움을 일으키는 현상인 것이다. 기독교 백과사전에서는 생리적 심리적 병이란 신체조직의 어떤 부분이 악화되거나 불건전하게 변형된 상태 또는 정상적인 신체적 기능이나 정신적 기능이 전도된 상태 또는 장기적이거나 단기적인 신체 또는 정신의 비정상적 상태를 포괄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정의하였다. 신체나 정신의 일부 혹은 전부에 이상이 있어 정상적인 기능이 어렵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를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서의 의미는 구약에서 할라는 ‘약해지다, 지치다, 병들다, 아픔을 느끼다’의 뜻으로 쓰인다. 히브리어 동사 할라는 이보다 훨씬 더 넓은 뜻을 지닌다. 구약에서는 신체적인 차원에서 상처가 난다든지 결함이 생길 때 약해져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노소스로 ‘병, 재앙, 유행병’을 의미하고 ‘재난, 방종, 방탕’을 뜻한다. 예수님 자신은 병든 자를 고치는 의원으로 오셨고, 모든 사람이 병든 자라는 사실을 말씀하셨다(눅 45:31). 이명수 교수는 총체적으로 병든 인간으로 보았다. 그는 질병이란 한 인간에 있어서 육, 혼, 영이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자연 사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정상적인 행동들을 하기에 불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원인들에 의하여 소외, 분리, 부조화, 무질서, 그리고 타락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질병의 종류를 육체적 질병, 정신적 질병, 정신-신체적 질병, 영적 질병, 영적-정신적 질병, 영적-정신적-신체적 질병, 사회적 질병으로 보았다.
질병의 원인에 대하여 Paul Tournier는 우리의 건강을 좌우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는 생의 양태이다. 그들 자신의 단점과 그를 지배하는 열정과 고충, 반항과 의혹, 그 저변에 깔린 불안으로 인해 저항력이 약화되고, 삶의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여 질병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는 정확한 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과학적 객관성에 의한 물리적 요인과 정신적, 영적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세 요소는 상호 영향을 미치므로 균형이 깨어지고, 평형이 깨어지면 질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성서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죄, 사탄, 믿음의 강화, 교만, 신앙의 인격과 믿음의 성장, 하나님의 영광, 신자들을 경고하기 위하여 생겨난다는 것이다.
4. 질병과의 상관성
죄와 질병이 관련이 있다는 관념은 오래되었다. 신명기적 유대교는 모든 질병이 죄의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즉 질병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들이라는 것이다. 헬레니즘적 사고방식도 상당히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질병이란 제멋대로 행하고 신의 특권을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신들의 진노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였다. 김세윤은 이에 대하여 질병은 병과 고통, 신체의 상체와 악기능, 마음의 불안, 질투, 미움, 무가치함, 걱정, 두려움 등의 감정, 영성과 도덕성에 있어서의 무질서와 왜곡, 소외, 착취, 분열, 투쟁, 전쟁 등을 가져오는 삶의 균형 혹은 면모에 있어서의 파열이다. 죄로 인하여 질병이 온 경우에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 치유가 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따라 행하게 되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출 15:26)고 말씀하고 있다. 질병은 하나님이 죄로 인하여 징계하시는 심판이요, 하나님의 벌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다(마 9:1-8)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병자는 건강하게 되어 자기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죄가 직접적인 병의 원인이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죄를 짓는 자에게 벌하는 방편 중의 하나가 바로 질병이라는 것을 일관성 있게 말씀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하여 본다면, Ken Blue는 수년간 매춘부로 일하던 여성이 자신의 많은 육체적 질병에 관해서 기도로 여인이 고침을 받게 되었다. 그녀의 질병들이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 근거하고 있음을 깨닫고, 육체적 문제에서 관심을 돌려 회개와 죄 사함에 대한 영적 필요에 초점을 맞추어 용서를 체험하게 한 결과 치유되었다. 죄로 인하여 질병이 찾아왔는데 죄의 문제와 죄책감에서 놓여나자 질병이 치유된 것이다. MacNutt는 중풍으로 고생하는 Mae에게 상담하며 기도하는 중에 과거의 사건에 원인이 있음을 깨닫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를 한 후, 신부가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해졌음을 선포하자 얼굴이 밝아졌고, 신부가 오른손을 잡자 마비되었던 손에 힘이 생기고 펴지며 곧 걷게 되었다. 이 외에도 미워하던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학대했던 자를 용서하자 영적, 정신적, 육체적인 전인의 차원에서 치유가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치유 하역을 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죄의 문제는아주 중요하다. 죄로 인하여 온 질병은 회개를 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수많은 증거를 찾아 볼 수 있다.
5. 성서적 치유
구약에서 사용된 히브리어의 치유란 단어는 동사로 라파(치유하다, 건강하게 하다)이다. 이에 파생된 단어는 레푸아, 리푸트, 마르페 등의 단어가 있다. 이사야 53:5의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의 용례에서는 라파의 함축적인 의미들인 치유와 회복이라는 주제가 결합되어 있다. 신약에서도 치료의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동사 소조이다.
‘병에서 구원하다. 병에서 놓아 준다. 낫는다, 건강해진다. 죽음에서 구한다, ~에서 구출한다. 하나님이나 그리스도가 구원하신다,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치유는 단지 육체적인 치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인 치유는 물론 죄의 용서와 구원 그리고 정신적이고 영적이고 사회공동체적인 차원(환경)까지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치유로 보고 있다. 곧 총체적인 치유인 것이다. 이명수 교수는 온전함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인간회복을 인간구원으로 사회 회복을 사회 구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전자를 하나님의 나라의 오른 팔로, 후자를 그의 왼 팔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양자가 다 이루어진 상태가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의 실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죄로 인하여 질병이 왔을 때 어떻게 질병을 치유해야 하는가? 먼저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진정한 치유자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이 치유자라고 할 때 우리는 그 분의 치유하시는 은총을 간구해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사역을 행하는 동안 이끌어 주며 그의 뜻을 계시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하고, 일어나는 일들에 능력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하고, 우리에게 올바른 생각과 아이디어와 말을 주실 것을 기도하고, 치유 사역하는 동안이나 끝난 후에 치유 사역에 연관된 모든 사람 및 우리 가족, 친구들과 개인적인 일들을 사단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한다. 먼저 질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때로는 전문가의 도움을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분들, 상담사, 육체를 다루는 의사, 환경을 다루는 사회복지사와 함께 총체적인 면에서 관찰하고 진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마 6:14-15)고 하신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지 않을 것이다. 심한 죄책감은 몸도 마음도 상하게 하기 때문에 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죄책감은 죄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함 없이는 하나님과의 화해도 죄로 인하여 온 질병인 경우 치유도 어렵다. 성령은 사도 요한을 통하여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요일1:9)고 하였으므로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도 치유가 일어난다. 시편 32편에서 말하는 죄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반역적인 마음의 태도와 올바른 기준인 하나님의 법에서 잘못된 행위, 그리고 그런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왜곡의 현상과 범죄의 성향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죄는 단절이다. 용서를 받은 자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징계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바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하여 오셨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앓던 여인은 예수 몰래 옷자락에 손을 대고 고침을 받았다. 영적인 죄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치료 역시 병행이 되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총체적인 치유를 하신다. 특히 환경 문제의 회복에 있어서 다윗의 시대 3년 계속하여 기근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 그 이유를 물었다. 사울왕이 기브온 족속을 죽인 죄로 인하여 진노가 임하였다고 응답하셨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더니 다시 비를 주셨다(삼하 21장). 죄를 지었을 때는 환경이 저주를 받는다. 죄를 회개하고 창조주 앞에 피조물로서의 바른 위치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다시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복지도 관여하신다. 즉 총체적 치유를 원하시는 것이다.
6. 결론
인간은 비록 죄의 결과로 인하여 병들게 되고, 저주받고, 죽게 되었지만 결국 구원받아야할 존재이다. 여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 죄와 질병과의 상관성의 문제인데 가장 큰 해결방안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환경까지 저주받은 것이라면 인간의 회복은 환경의 회복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본성의 문제가 아닌 영적, 정신적, 육체적인 전인의 차원에서 관계회복의 문제라는 것이다. 치유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기만 한다면 치유는 당연히 일어난다. 그러나 온 세상의 인류가 어떻게 100%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가능하겠는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믿는 자, 성령 안에 거하는 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만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입는 자들도 있지만 결국 죄로 인하여 인간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환경까지 총체적인 질병과 죽음이 임하였다. 그러므로 죄의 용서와 구원, 육체적이고, 정신적이고, 영적이고, 사회공동체적인 차원(환경)까지 회복되는 총체적인 치유가 필요한 것이다.
'성경의 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야 선지자의 우울증의 치유에 관한 소고(왕상 19장을 중심으로) (2) | 2023.08.20 |
---|---|
기독교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 (0) | 2023.08.18 |
시편 이해하기 (0) | 2023.07.31 |
출애굽기 이해하기 (0) | 2023.07.30 |
창세기 이해하기 (0) | 2023.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