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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원리

기독교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

by deuga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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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기독교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이며 결국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과정의 삶이다. 그 삶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맞물려 있다. 마지막까지 그 뜻과 진리를 향하여 거듭난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개인의 구원과 선교에 기초한 대중적인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즘과 같이 복잡하지만 편리한 시대,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타락했고, 어지러운 이 세상에 과연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또한 이러한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 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인간 이해의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대 희랍에는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정의하면서 생각하는 인간을 제시하였다. 기독교는 신앙의 인간과 종교적인 인간을 제시했다. 근대는 기술을 접목하여 제작하는 기술적 인간을 정의하였다. 오늘의 서구 문명은 이성의 인간, 신앙의 인간, 기술의 인간 이 세 개의 인간에서 나왔다. 이성의 인간은 희랍 문명을 만들었고, 신앙의 인간이 기독교 문명을 낳았으며, 기술인이 근대의 과학기술 문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을 낳았고, 신앙하는 인간을 형성하였고, 그리고 제작하는 인간을 창조하였다. 이 셋 중 기독교의 인간상은 어떻게 어떤 요소로 구성되었는가를 창조와 타락과 구원이라는 세 가지 원리에서 설명할 수 있다.

 

원시인의 인간

희랍의 신화에는 성서의 인간 창조론과 비슷하게 흙을 빚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주전 20세기 전후에는 죽음 이후에도 육체는 없어져도 정신이나 영혼은 남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애굽의 종교나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영혼의 전생 또는 윤회의 사상이 나오게 된다. 영혼의 윤회라는 사상은 어떤 특정한 신화나 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원시 종교와 신화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상이다.

 

희랍 철학의 인간

희랍 철학의 대표적 철학자들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로티누스의 인간관을 살펴보면, 플라톤은 이원론적 원칙을 그의 인간관에 적용한다. 그는 인간의 육체는 비본래적이며, 상대적이며, 변하기 때문에 죽어서 없어질 것으로 여겼다. 반대로 영혼은 불멸의 본질을 가지고 있어서 이데아(Idea)의 세계에 가기를 원한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 더 현실적인 인간관을 추구했다. 그는 영혼 안에 두 가지 부분 즉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으로 나눈다. 플로티누스의 인간관은 철저하게 플라톤의 인간관을 답습하는 동시에 더 관념론적 인간관을 가졌다.

 

동양의 인간

동양인의 인간관은 불교와 유교의 인간관에서 그 대표적인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인간관은 천도교의 인간관에서 불교나 유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을 발견한다. 각 인간관을 개관해 보면, 먼저 불교의 인간 이해는 인간을 현실적, 실존적으로 이해한다. 현실적 인간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인간 스스로 가지는 모든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해결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유교의 인간관은 불교의 인간관보다 더 현실적인 동시에 윤리적이며 또한 사회적이다. 유교에서의 인간 본질은 인(仁)이다. 유교는 인간을 도덕적 주체자로 본 것이다. 한국 특유의 인간관은 최수운이 창도한 천도교에 나타난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데 한울님은 인간을 떠나서 존재하며 인간에게 계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여러 가지 인간 이해

브루너(E. Brunner)의 1937년에 출판된 「기독교 인간학」에서 물리적 인간관, 동물학적 인간관, 낭만적 인간관, 보편적 인간관으로 인간을 이해하였다. 저자는 여기에 포이에르바하(F.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 마르크스(K. Marx)의 「자본론」에 의해 두드러진 공산주의의 유물론적 인간관과 현대 실존주의의 효시인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의 실존주의적 인간관을 첨가한 것이다.

 

문제아로서의 인간

많은 문제를 가진 인간에 대하여 한국인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운명론적인 팔자소관이라는 사상이 지배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이성의 동물이며 자연을 극복할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자연에 군림할 시대가 왔다고 말할 수 없고 우주의 신비를 알 수는 없다. 인간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결론

성경에 나타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과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여 주고 있다. 성경의 인간관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인간의 범죄와 타락을 지적하고 구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온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특성 중에서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과 자기 자신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수많은 성경 맥락에서 제기 될 수 있는 것 이지만, 그 맥락은 대략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복잡한 현상을 이루기 때문에 그 정의들은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떤 이들은 정의는 다른 이들의 것보다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이지만 부분적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의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실존적인 관계의 문제가 서로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이며 결국 살아있을 때의 삶이다. 그 삶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맞물려 있으므로 마지막 까지 그 뜻과 진리를 향하여 거듭난 모습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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